jinwoolee
부산 출생, 동아대 정법대, ROTC 21기 임관,
삼성그룹 근무, 2002년 캐나다 이민,
현재 킹스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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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용기있는 결정, Oh! 캐나다
jinwoolee

 

 

(지난 호에 이어)


4. “Never stop learning English”


캐나다에 이민 와서 가장 열심히 해야 할 분야는, 그 뭐라 해도 영어의 숙달이다. 당시 ESL 선생님, 스테파니가 말한 “Never stop learning English” 란 메시지를 그대로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끊임없이 말하고 듣고 쓰기를 계속해 왔다면 지금쯤 영어가 자연스럽게 체득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직도 이곳 원어민처럼 그렇게 유창해지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젠 적당히 그냥 눈치로 알아듣고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르겠다고 묻기도 하는데 그래도 별탈 없이 이제껏 잘 살아온 것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여하튼 우리 이민 1세대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평생의 과제가 영어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지금 만일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았던 7080세대보다는 훨씬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각 개인의 영역이니…


참고로 본인의 경우는 운 좋게 첫 직장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 하였고, 또 해외 출장을 다닐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도 가졌다. 한국에 있을 때는 원어민 회화반에 등록해서 꾸준히 기초 실력을 다진 적이 있어, 이민 와서도 별 두려움 없이 곧장 경찰과 장교시험에 도전하기도 했다.


나름 영어에 관한 결론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가능한 한 많이 접하고, 본인이 끊임없이 투자한 만큼 느는 것이지, 캐나다에 왔다고 불쑥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민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영어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외국인을 만날 때나, 여행을 할 때도 즐거운 수다(?)를 떨 수 있으니 유쾌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영어로 대화 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더욱 분발할 것을 제안해 본다. 


끝으로 재미난 일화 하나, 오타와에 살 때 이웃에 살았던 중국인, Mr. 왕(Wang) 부부, 부인은 6개월마다 중국 상해를 왕래했고, 자신은 오타와에 머물며 T&T라는 중국 대형 식품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들을 통해 처음 인사 나눌 때, “How are you? “란 초간단 인사말도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아들의 설명으로 중국에서 평생 알파벳 조차도 배운 적이 없어, 아예 영어 배우길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어 한마디 않고 중국어(만달린)만 하더라도 살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중국 커뮤니티의 힘인 듯 했다. 어쨌던 우린 중학 시절부터 영어를 배웠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함이 중요할 듯 하다.

 

5. 첫 정착지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Ottawa)     

   
이민에 있어 첫 정착도시를 어디로 하느냐는, 이민 후의 삶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단초가 되는 듯 하다. 본인의 오타와에서의 이민 생활은 다소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편이다. 즉 직업 선택이나 자녀 교육 방법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믿음에 근거하여 추진한 결과, 비교적 만족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남들이 하는 대로가 아닌 직접 현지 답사한 자료와 한국에서의 직장 경험을 토대로 결정한 오타와는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며 잘 꿴 첫 단추에 해당한 것이었다.


한편 이민 올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편이 아닌 오타와는 연방 정부의 수도로서 동쪽으로는 몬트리올과 200km, 서쪽으로 토론토랑 400k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도시 규모로는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 캘거리에 이어 5 번째로서 자체 인구 약 80만, 궤벡주의 20만 도시인 게티뉴와 함께 어울려 약 100만의 인구를 가진 아름다운 도시다.


시내로 들어서면 오타와 강을 배경으로 웅장하면서도 멋진 자태를 뽐내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도심 한편을 감싸 안아 휘도는 리도 운하가 있고, 특히 5월 봄엔 튜립 축제로 장관을 이뤄 도심 전체를 꽃으로 장식하는데,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로 피신했던 네덜란드 공주의 출산을, 특별법으로 만들어 도와준 감사함의 표시로, 매년 네덜란드에서 튜립을 공수해 온다는 감동 스토리가 전해져 온다. 


카나타란 서부 외곽 지역엔 IT 산업을 대표하는 첨단 단지가 있고, 우리가 오랫동안 살았던 바이헤븐에선 연방경찰(RCMP) 본부가 있고, 다운타운에 있었던 국방부 청사도 인근 지역으로 이전 함으로 잠시 개발 붐이 일기도 했다.


여하튼 아이들 교육 측면에서 오타와를 선택한 것은 참 절묘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오타와에는 연방정부 조직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영어와 불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가장 안정적 직업 중 하나인 연방 공무원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면 아주 훌륭한 입지 조건을 갖춘 이상적 도시다. 

 

6. 아니, Job도 없이 어떻게 오타와로 오셨죠?    


인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밴쿠버에서 6시간을 대기하고 오타와 공항에 도착했다. 장장 20여 시간 끝에 도착한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엔 마중 나와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어, 솔직히 약간은 쓸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항상 다짐했던 긍정적 생각으로, 우리 가족은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또한 지난 답사를 한 경험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앞섰기에 꿈과 희망을 담아 자신있게 오타와를 소개했다. 숙소는 1달 남짓 남았던 2 Bed 아파트를 서블렛으로 계약해 두어 당분간 임시 거주지로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다. 당시 가장 마음 붙일 곳은 한인 성당뿐이었기에, 매주 거르지 않고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그 곳에서 유용한 여러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어 감사했던 마음이 지금도 찡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곳에서 또 상처를 받기도 했으니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잘 판단하고 대처하는 것은 늘 본인 몫이니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아내가 성당 모임에 참석했다가 받았던 마음 상처의 한 부분이다. 제목처럼 왜 Job도 없이 오타와로 왔냐는 핀잔을 수반한 질문이었다.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힘든 이민생활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도전 의식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오타와 인근에는 IT 단지인 카나타를 두고 있어서, 당시 한국에서 반도체 및 원자력 부문의 고급 인력들이 스카웃 제의를 받고 고 임금에다 이주 비용까지 받고 온 교민들이 상당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그 어느 것 하나 보장받은 것 없이 온 상황이라 당시 아내는 내심 아프고 슬펐던 것이었다. 직장 없이 왔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라 믿었다. 


차라리 그것이 우리 가족을 보다 단단하게 묶어 주었고 또 각자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절박함을 심어 주었던 것 같다. 세월 지난 지금 되돌아 보면, 직장 보장 받고 방심하고 우쭐했던 그들보다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왜냐하면 그들도 오래지 않아 해고 통지를 받게 돼, 처음부터 어렵게 시작했던 사람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내일 일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신념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제2장 낯설고 망막한 캐나다 땅,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제1절 Job과 관련한 생존 Know-how

 

 


1. “잃어버릴게 없다(Nothing to lose)”는 각오로


 캐나다로 이민 온 사람들의 직업, 가족, 연령 등 여러 다양한 요인에 비해 이민 온 목적을 물어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왔다고 한다. 만일 여러분도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꼭 한가지 지녔음 하는 정신력 하나, 즉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배수의 진을 치자는 것이다.


한국에 남겨둔 재산도 없이, 기꺼이 도전적 삶을 살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는 게 어떨까? 즉 간단 명료한 논리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는데 우리 부부가 “이까짓 고생쯤이야”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물론 결코 만만찮은 캐나다 이민 생활이겠지만, 세상 일은 동일한 일이라도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감내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하고, 참아낼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즉 아주 단순히 생각해서 먹고 사는 일만 해결되면 걱정할 일이 뭐 있나, 아이들 학교 생활 잘하고, 건강 관리만 잘 해나가면, 단출한 사회 활동과 인간 관계, 신경 쓸 일 적어 오히려 마음 편할 수도 있다. 


두려워 할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배짱이면, 남을 너무 의식하는 체면도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 자연스럽게 응답한다.


엄마, 아빠의 고생함을 알아 차리고,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부모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이민 성공이라 한다면 여러분은 동의 할 수 있는가? 아님, 그것만으론 부족하여 다른 또 뭔가 즉 돈도 함께 벌어야만 진정한 성공이라 믿는가?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는 것임을 미리 알았기에 캐나다로 소박한 마음으로 이민 오지 않았냐고 반문해 보자. 어느 것이 진정한 성공인지는 각자가 판단해 야 할 몫이다.

 
다만 본인이 경험하고 느낀 캐나다 초기 이민 생활부터 지금껏 추구했던 삶의 방식이 그랬고, 또 우리 아이들이 보여준 반응이 그러했다는 본인의 경험치를 말한 것이다. 이 글을 접하는 이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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