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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역과 기도(31)
jinkyukim

 

(지난 호에 이어)
 주하나님의 <사역자-PASTOR>들은 성령과 말씀으로 교회를 치리하고 인도하며 “자기의 발걸음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성도들보다 앞서서 가야 한다. 주하나님의 양떼들을 먹이도록 위탁 받은 작은 목자들(사역자)은 그 책임에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합당한 “먹이”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도들 앞에 열린문을 두며, 교회에서 그들에게 권위를 주고, 그들의 가슴 속에는 확신을 줄 것이다. 사역자들은 자기 양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야 하고, 그들을 지켜 보아야 하며 그리고 솔선하여 공중예배의 목장으로 그들을 인도해야 하고, 주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입과 그들에 대한 주하나님의 입이 되어야 한다.


<사역자>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믿는자들(성도)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그들의 목자를 따른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양인 자들은 그들의 목자에게 대단히 유순할 것이며, 낯선 자들(모본이 안 되는 사역자)에 대해선 대단히 조심하고 피하며 공동체를 떠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그리스도의 양들은 “분별하는 귀와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은(성도)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낯선 자로부터 도망하고” 그를 따르기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음성(참과 거짓)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자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우리를 <그리스도에 관한 환상>으로 이끌려는 자들을 따른다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직접 거룩한 진리의 효능과 권능을 체험한 자들, 그리고 그것의 맛과 재미를 아는 자들은 사탄의 간계를 발견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사역자>들의 말씀 증거는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서는 분명하고 확실한 말씀 증거(설교)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은 거룩하신 주 예수님의 통역자 역을 하심을 알자! 주 예수그리스도는 “문”이다. 즉 교회의 문이다. 


<나는> 양의 우리의 “문”이다. 그리스도의 적들은 그의 교회의 강도이지만 스스로 목자들인 척하고, 더욱이 <목자들 중의 목자>인체 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서 마음의 눈들이 치료되고 알려진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서 배웠다. <복음>의 의도는 “인간들의 눈을 열게 하기”위한 것이다(행26:18).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안약은 그리스도밖에 누구도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안약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나와야만 한다(요10:9, 계3:18). 우리 크리스천들은 믿음과 순종의 덕을 세우자! 누가 “삯꾼”인가. “양을 염려하지 않고” 일보다도 임금(wages)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 바로 <삯꾼>이다. (신24:15, 삼상2:9, 사56:11, 미3:5,11). 


임무(사명)보다 자신들의 안전을 더 신경 쓰는 자들은 사탄의 유혹에 쉽게 먹이가 된다. 죽어가는 영혼들의 <피>는 부주의한 목자의 <손>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제반 의무는 무엇인가! (히브리서13:1-17)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반추하며, 실천하고, 목에 걸고, 어깨에 메고 살아가자!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중심”을 아신다. 그러므로 위선자의 불신앙은 세상에 드러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눈 앞에 먼저 드러난다. 신앙이 한 가정을 다스릴 때 <신앙>은 그 가정을 교회로 만든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서로의 사업에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서로 얹혀 사는 동물이요 언제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을 뿌리는 자는 본인도 물뿌림을 받게 마련이다. 관심이 있어야 선행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의 사랑을 체험했고 그 사랑을 성령에게 되갚으려 한다면 <기도>를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된다. 


우리는 <기도>에 힘을 같이 하여야 한다.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해 정기적으로, 믿음으로, 그리고 열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야곱처럼 주하나님을 상대로 겨루어야 하며, 엘리야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해야 하며(약5:17), 주하나님을 붙잡도록 열심을 내야 한다(사64:7). 


곧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친구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필요사항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게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들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우리들의 속에서 우러나오지 아니한 겉모습 취하기를 중지 하여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내적 존재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어지러운 세대를 본뜬 것이다. 


다만 우리들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내 자신들의 겉모습을 마음속 깊은 속에서 우러나온 내적 존재를 표출하는 모습으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우리들은 주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입증함으로써 <복음>을 증명할 수 있는 명세서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롬12:2). 


우리는 어떻게 구원에 이르고 구원을 얻는지에 <복음>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롬10:9-10,11,12,13).


“고백”은 고백의 외면으로부터 고백의 내면으로 향하는 신앙을 말한다. 신앙이 신앙의 침묵으로부터 선포에 이르게 되면, 또 침묵에서 주님의 영광과 은혜를 선포하게 되면, 바로 그 소리가 “고백”이다. 


즉 만약 네가 너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고 주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너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음으로 인한 믿음이 의에 이르는 작용을 하며, 입으로 인한 “고백”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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