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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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쎈 지렁이
jakim

1979년도 여름에 친구 장보고와 또 다른 친구 셋이서 Cold Water(콜드 워터)로 낚시를 떠났습니다. 캐나다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고, 이제 조금 캐나다를 알 것 같으니 '넓은 캐나다의 자연을 즐겨 보자.' 하며 원대한 포부하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그래 호수의 천국 온타리오에서 낚시가 최고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들이 재워 주신 갈비와 음식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싣고서, Hwy 400을 타고 올라가다 Hwy 69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콜드 워터에 내려 보트를 빌려 타고 조그마한 바위섬에 도착해 자리를 깔았습니다.
 
온 섬에 우리 셋만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에 '콜드 워터'라는 피서지, 정말 기막힌 선택 아닌가요? 저와 장보고는 그해 여름에 지렁이 잡이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온 섬 하나가 그 순간 내 것이니 (너는 내 것이라)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리를 펴고 우선 새로 산 낚시대를 던지기 위해 지렁이를 낚시바늘에 끼워야 하는데…. 요것들이 꿈틀꿈틀 움직여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야! 장보고, 지렁이 좀 끼워주라."
 
"뭐, 니꺼 니가 끼워라."
 
"움직이니까 못 만지겠다."
 
"너 어제까지 지렁이 잡았는데 왜 그래?"
 
"그거랑 이거랑 달라."
 
"에이 이리 내, 바보같이…."
 
"야! 이왕 끼워주는 거 큰 걸로 끼워주라."
 
우리 착한 장보고 지렁이를 끼워 줍니다. 저쪽에서 불을 지피고 있던 다른 친구가 식사가 거의 됐다고 알려 줍니다. 낚시대를 받침대 두 대 위에 올려 놓고 저쪽으로 가서 고기 굽고 맥주캔 (중학생 시절 선생님들 소풍 갈 때 미제 맥주캔 따서 거품만 먹던 생각이 나네요. 아까와서 그랬겠죠.) 따고 식사를 합니다. 2~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갈비를 먹으려면 큰 맘 먹고 일 년에 한 두어 번 먹었는데, 이거 온전히 완판 갈비가 우리 것이니…. 또한 맥주도 그 당시엔 24개 짜리가 약 $11 정도 했으니 한 캔에 약 50센트. 이거야 말로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며 낄낄거리고 있다가 낚시대 있는 데를 쳐다 보니 제 낚시대가 없어진 것입니다. 장보고의 낚시대는 그대로 있는데 내 낚시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저쪽에서 제 낚시대가 물 밑으로 가라 앉고 있었습니다.
 
"야, 장보고 지렁이가 낚싯대를 끌고 갔다. 오늘 산 새 낚시대를…."
 
"뭐, 지렁이가?"
 
"그래 아까 네가 그 중 가장 큰 지렁이로 끼워 줬잖아. 힘이 엄청 쎈 지렁이인가 봐."
 
"물고기가 끌고 갔겠지, 지렁이가 어떻게 낚시대를 끌고 가니?"
 
"무슨 소리야, 물고기란 본 적도 없고 지렁이가 끼워진 건 우리 모두 봤잖아, 그러니까 지렁이가 끌고 간 거지…."
 
 
사실 저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은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이고, 바다 고기로는 회를 떠서 먹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선 워낙 고기가 많으니까 먹지 않고 잡았다가 놓아 주면서 마치 은혜를 베푸는 듯 하는데 (꼭 놓아 줄 때는 두 손으로 경건하게), 왜 그럴까요? 그리고 그런 걸 뭐 'sports fishing'이라나 하던가요? 심심풀이로 잡았다가 자비심이 발생해서 풀어 준다나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고기를 잡아서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먹지도 않을 것을 자기들의 쾌락을 위해서 잡았다가 놓아 줬다가 하는 건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 인간보다 한 단계 고등한 생명체가 있다 합시다. 그들이 우리 인간을 덫으로 잡았다가, 자기들 감옥에 가두었다가, 한참 후에 '자 그래 불쌍한 인간들아, 이제 너희 가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너희 가는 발걸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를 원한다.' 하면서 우리를 놓아 준다면 정말 우리 기분이 어떨까요? 게다가 덫에 걸릴 때 다친 발목뼈가 부러진 것 같다면? 모든 물고기도 낚시바늘로 입 안이 다 찢어지고 비늘이 많이 상합니다.
 
 
33년 전 여름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같이 했던 세월이 재미있었고 소중한 추억입니다. 그때 젊었던 우리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노인이 되었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때의 셋 모두 얼마 전부터 열심히 신앙 생활 하며 제대로 된 인생의 후반전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저 애들 키우고 열심히 사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서서히 정리해 가며 나머지 인생을 알차게 꾸며야 하겠습니다. 축구는 후반전이, 야구는 9회말, 골프는 18홀이 가장 중요한 중요한 순간이 아닌가요?
 
건강한 여름, 추억이 있는 여름을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