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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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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엘의 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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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 나를 따라와 봐요” 다이안은 조심스럽게 살살 걷는 걸음으로 앞장선다. 마구간으로 들어서면서 “베엘이 오늘 새벽에 수놈 한 마리를 낳았어요.”


“어머나, 우리 베엘이 새끼를 낳았군요.” 힘이 없어 보이는 베엘은 눈만 꿈먹 꿈먹 하면서 선채로 제 새끼를 보면서 또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헬렌 왔어요? 나 죽겠어요.”하는 눈빛이다. 


새끼를 낳았으니 얼마나 힘 들었을까? 새끼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엄마 베엘의 젖을 머리로 툭툭 받아 치면서 젖을 빨아 먹고 좋아라 한다. 세상 물정을 모름으로. 


 에미는 새끼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이 살아가야 할 방법들을 가르치려 한다. 이것은 먹지 말고 이것은 먹고, 거기는 가지 말고 이것은 이렇게 하고, 베엘은 순간순간 내 눈을 쳐다본다. 


 나도 말을 쳐다보며 안부의 손 인사를 한다. “알았어, 너 애기 낳았으니 회복할 때까지 너 안탄다, 걱정 마라” 


 모처럼만에 다시 찾은 마장에 들어서니, 다이안(말 주인)은 말이 새끼를 낳았다고, 밤새 잠도 못 잤다면서 싱글벙글 좋아한다.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걷는다고 한다. 내가 보았을 때는 태어난 지 5-6시간 정도 지났다는데 살살 뛰어다니기도 한다. 세상에.


 짐승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은 낳자마자 비척비척 몇 번만 하면 걸어 다니다가 한 시간만 지나면 뛰기도 한다니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된다. 


 다이안은 베엘이 순산했다고 만면에 웃음꽃이다. 말이 새끼를 낳을 때쯤이면 주인은 잠을 잘 수 없단다. 왜냐하면 말이 순산하면 좋지만 난산이 되면 새끼가 잘 나오도록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어야 한단다. 


남편과 함께 웃옷을 다 벗어버리고 맨 두 팔로 말 자궁에 손을 뻗쳐 넣어 새끼를 잡아 빼야 하기 때문이다. 수의사를 부르기엔 말들이 많아 늘 새끼를 낳으니 다이안 내외는 해산관 노릇이 수의사보다도 더 노련하단다.


 말은 풀 뜯어 먹고, 마른 밀대 짚을 먹지만 근육이 아주 단단하다. 말은 또 당근을 좋아한다. 말갈기 휘날리며 숲 속이나 벌판을 달리다가 당근 밭이 있으면 방향을 확 틀어 당근 밭에 들어간다.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며 당근을 먹는 것을 보면 너무 맛있어 한다. 


 마구간은 물론 말들이 있는 곳엔 여기 저기 물통이 있다. 히히힝! 거리며 물도 많이 마시니 소변양도 엄청나다. 쇠파리들 때문에 커다란 파리채로 말 몸에 붙은 쇠파리 잡아주는 일은 필수다. 


 다이안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 키우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을 수없이 보아 왔고, 지금도 말과 함께 살아가니 그녀의 일생은 자녀들보다도 말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이다. 


 마장에 가면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지키는 개가 여러 마리 있고, 몇 마리의 염소, 수십 마리의 닭이 있는데 수탉도 있고 병아리들도 있다. 잔디밭이나 마당에 그냥 놓아먹인다. 


순수 우리말로 하면 노지 닭이고, 계란은 병아리가 되는 유정란이다. 노른자가 노랗다 못해 주황색을 띤 그 계란은 계란향기도 진하지만 정말 고소하다. 


 말에게서는 말이 나오고 사람에게서는 사람이 나온다. 내가 보는 갓 태어난 망아지가 저리도 귀여운데, 베엘도 제 새끼를 귀여워하면서 저것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며, 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것 같다. 


 생명이란 신기하고 신비롭고 참으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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