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sj
(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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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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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만나는 50대 초반의 미쎄쓰 리가 있다. 이런 저런 말이 오가다가 미쎄쓰 리가 하는 말, “제가 * * 교회를 한 10여 년째 다니고 있는데, 우리 교회 S 목사님은 참 훌륭하세요.” 


 “아, 그래요? 훌륭한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나가니 참 좋으시겠네요. 그 훌륭한 목사님의 훌륭한 점을 한 가지만이라도 말해 줄 수 있어요? 듣고 싶네요.”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나가 봉사한다는 미쎄쓰 리는 늘 긍정적이고 부지런하고 밝은 모습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여자다. 


 “네, 지난번에는 목사님께서 저와 다른 권사님 한 분에게 점심 대접을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한국식당엘 갔어요. 식사 주문하기 전에 목사님께서 두 그릇만 시켜서 셋이 먹자고 하셨어요. 돈을 아끼자고요. 그래서 2인분만 시켜서 먹었지요. 얼마나 알뜰하신지? 참 훌륭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래요? 그 중에 누가 식사를 못하실 상황이었던가요? 두 그릇만 시켜서 셋이 나누어 드시게요?” 


“아니요, 그건 아니예요” 


“그럼 모두 식사를 하실 수 있는데, 2 인분만 시키셨어요? 돈을 절약 하시려고요?”


“네” 


“그 일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더니 미쎄쓰 리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안 그래요?” 한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니 


“아니 왜요?” 


“목사님께서 어떤 다른 뜻이 있으신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훌륭한가? 안 훌륭한가? 나는 아니라는 생각인데...”


“어떤 생각이신데요?” 그녀는 토끼눈이 된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이건 내 생각인데 자 봅시다. 역지사지(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함)로 볼 때, 나는 목사님도 아니고, 두 권사님도 아니고, 식당 주인도 아니고, 식당 웨이츄레스도 아닙니다만, 제 삼자의 입장에서 지금 듣고 느낀 대로를 말해 볼게요. 


옳고 그름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예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이예요. 어쨌든 내 생각을 말해 볼 테니 들어보고 난 후, 미쎄쓰 리의 또 다른 생각도 들어 봅시다. 


내가 식당 주인입장이라면 성질 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식당도 잘 안 되는데, 셋이 와서 두 그릇만 시키는 일,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요. 몸이 아프다던가? 방금 전에 식사를 했다던가? 한 분이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는 어떤 상황 등 그럴 땐 이만저만 부득이한 일로 2인분만 시켜야 되겠습니다, 하면서 일하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라고 봅니다. 


또 웨이츄레스를 생각하면, 셋이 식사를 해야 하니 수저 좀 하나 더 갖다 주시고요 젓가락도요, 그릇 좀 하나 더 주시고요, 물도 한 컵 더 주세요. 김치하고 땅콩볶음 다른 반찬 좀 더 주세요. 내프킨 좀 더 주세요. 이거 맛있네요, 웨이츄레스에게 일은 더 많이 시키게 되겠지요? 


역시 미쎄스 리는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웨이츄레스는 사람 아닙니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그 웨이츄레스는 기분 좋겠습니까? 뭐? 훈련시키느냐고요....  


그리고 2 인분 가지고 감사하다며 기도하고 셋이 나누어 먹으면 두 분의 권사님들 기분이 어떨까요? 아이고 알뜰하신 우리 목사님 1인분 값은 아프리카 선교에 쓰시고, 2인분 가지고 우리 셋이 나누어 먹으니 덕분에 다이어트도 하고 감사가 넘치네요. 음식 맛이 너무 좋아 수저를 못 놓겠네요. 그런 기분이들까요? 글쎄요, 내가 두 분의 권사님 중의 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시간이 참으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제가 그 목사님이라면 기분이 어떨까요? 식당 주인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까? 알겠지, 토론토의 한인사회가 뻔하니까, 식당 주인 눈치 보느라 입장 곤란한 중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만일에 그 목사님이 그런 눈치 볼 분이 아니라면 그 목사님은 양심에 뭐 맞은 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렇다면 그 목사님이 팁은 넉넉히 주셨을까요? 


내가 목사님이라면,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니 두 권사님들 식사 대접은 하고 싶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인과 상의하여 웬만하면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좀 초라하고 변변치 못하더라도 밥하고 김치찌개 끓여서 김과 멸치볶음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고, 권사님! 권사님! 하면서 마음 놓고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봉사도 많이들 하신다면서 칭찬도 해드리고, 웃으면서 배부르게 잡숫게 하겠네요. 라면이면 어때요, 만남이 더 중요하고 즐거운 일일 테니까요. 


식당 주인은 저 목사님이 있는 교회를 눈여겨 볼 것이고, 웨이츄레스 역시 저 목사님 참 짜다 짜, 생각해 볼 것이고, 내가 권사라도 깊이 다시 생각해 볼 일 아니에요?“ 


 어찌하여 훌륭한 목사님 이란 말인가? 미쎄쓰 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맞는 말씀이네요. 그러나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했다. 


 우리 서로 입장을 바꾸어 가면서 생각해 봅시다. 훌륭한 목사님인지? 안 훌륭한 목사님인지? 그 문제 이전에, 내가 식당 주인 이라면? 내가 웨이츄레스라면? 웨이츄레스가 내 딸이라면? 내가 권사님이라면? 내가 목사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은 순간순간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어떤 일일지라도 항상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럴 때 이해도 가고, 나 같으면 보다 나은 길,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하는 분별을 하게 된다. 


남의 경험에서 인생의 리얼한 또 한 수를 배운다.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학벌이나 지위, 지성이나 돈 등이 아니고 마음이라는 것, 배려는 곧 어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겠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서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면서,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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