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sj
(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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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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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만난 것은 꼭 5년 전이다. 그때 그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자기의 조국인 그리스 마세도니아의 Old pop song을 가수처럼 불렀을 때 화려함의 극치를 보았다. 나는 마세도니아의 노래를 잘 모르지만 분명 그 노래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부르는 노래임이 분명했다. 150여명의 마세도니안들의 박수 소리가 오랫동안 천장이 들먹거릴 정도였으므로. 그녀는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늘 친구를 걱정하는 남편과 함께 어제 그 집에 갔었다, 참으로 몇 년 만에. 그녀는 치매 중증으로 바보가 되어 웃고 있었고, 가까이 가니 그녀한테서는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가 심하게 났다.


 이제야 들은 이야기지만, 5년 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그녀는 치매 초기였다고 한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치매는 그녀 엘리자베스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엘리자베스의 남편 빌은 아내를 만난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으로 사랑이 극진하다 한다. 몸과 마음과 정신과 혼까지도... 아내가 저렇게 된 지금은 더 사랑한다 하니 사랑의 위대함을 여기서 본다.


 빌은 아내 말만 하면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사랑 엘리자베스! 내 사랑 엘리자베스! 하는 남편의 온 가슴은 엘리자베스로 꽉 차 있다. 착한 치매에 걸려 웃기만 하는 그녀의 두 눈은 초점을 잃었고, 눈 주변은 시커멓게 죽음의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건만, 하루 24시간 아내를 돌보는 남편은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민첩하게 돌아간다. 빌의 지극 정성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까.


 나의 남편이 레스토랑으로 식사하러 나가자고 하니 빌은 좋다고 하며, 우선 아내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리고 간다. 볼일을 다 보게 한 후, 의자에 앉혀 놓고 신을 신겨준다. 그런 다음 목도리를 둘러주고, 잠바를 입히는데, 소매 속에서 손을 잡아 끄집어낸다, 양손 다. 


잠바 앞의 지퍼를 올려주고 자기가 나갈 준비를 재빨리 한 다음, 아내의 손을 잡고 모시듯이 조심스럽게 나간다. 우리 차의 뒷좌석에 앉게 하니 빌은 엘리자베스의 다리 한 쪽을 들어 차에 먼저 올린다. 그 다음 엉덩이를 올리고 다른 쪽 다리를 들어 차에 올린다. 다시 엉덩이를 자리 잡아 잘 앉힌 다음 아내의 두 손을 앞에 모으게 하고 나서야 차 문을 닫는다. 레스토랑에 앉아 아내의 먹는 일도 일일이 돌보며 2살배기 애기 다루듯 한다.


 밤하늘에 은하수가 찬란히 빛나고 영롱한 별빛들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도 여명은 밝아오고 아침은 오는 것, 젊음이 영원할 수 없고 늙음이 와도 혼자 오지 못하고 치매와 함께 오다니, 나이 먹는 거 서러울 건 없다. 나만 먹는 게 아니므로.


 그들은 둘이 동갑 현재 70세, 치안 판사직 정년을 7년 앞두고 아내를 본격적으로 보살피기 위하여 2년 전 조기 은퇴했다. 아내를 돌보며 젊음을 불태웠던 아름다운 날들의 추억 속에 산다는 빌.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70대를 빌은 아내 바라지로 보내고 있다. 오래된 바이올린이 소리가 더 아름답다더니... 빌은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황혼 길을 걷는다.


 치매가 나아진다는 것 다 먹이고, 치료에 좋다는 것은 다 해주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별처럼 아름다운 빌. 목소리도 곱게 노래 부르던 새빨간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엘리자베스가 눈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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