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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기

부동산캐나다 칼럼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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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를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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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끙끙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침이 시작된다.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새벽 5시 반이다. 반신장애로 살아온 그이나 그의 자립심은 아내인 나에게 한 번도 옷 좀 입혀줘, 양말 좀 신켜줘, 하는 도움을 거의 요청해본 일이 없다. 우리가 각방을 쓴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그러나 내 귀는 항상 그이의 침실을 향해 열려 있다. 마치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언제나 달려갈 보초병과 같다고 할까. 


 집 근처 팀호튼 커피숍에 무슨 사인(sign)할 일이 있는 사람 마냥 폭설이 내리거나 비가 쏟아지지 않는 한 출근하다시피 한다. 오래 전 목회할 때 새벽기도회의 습관이 잠재해 있다가 되살아나서 그런가. 이 습관은 10년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 바람에 나도 아침형 생활습관이 몸에 배고 말았다. 


 배달된 신문들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신문 구석구석을 훑어본 다음, 따끈한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참으로 기분이 좋다. 이러노라 한 시간 정도 소모하며 즐기다 보면 밖에 나갔던 남편은 커피 한잔과 베이글도 종종 아내를 위해 들고 온다.


 이젠 루틴화된 시간표에 따라 일주일에 4일은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의 버라이어티 빌리지(Variety Village) 장애인운동센터에 간다. 유치원 보내는 엄마 같은 심정으로 도시락을 싸고 간식과 신문을 챙겨 장애인용 스쿠터 바구니에 담아 보내고 나면 나만의 하루도 시작된다. 그런데 참 고맙게도 가기 싫다거나 지루하단 불평하는 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금요일엔 장애인공동체, 주일이면 교회에 출석한다. 운전 못하는 바보 아내를 둔 덕분에 함께 나갈 때도 교통수단은 장애인 전용 버스다. 당신의 행동반경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깨닫고 따라주는 남편이 고맙다. 


 사교엔 빵점인 그이다. 대화를 시도하나 단답형 대화는 더이상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함께 사는 우리에겐 대화가 없어도 좋다. 한 집안에서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공존의 안심함이 있어 편안하다. 단순한 그의 움직임은 때론 어린아이같이 순진무구하나 그것이 답답함이 아니고 사랑스런 몸짓으로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린 50대에 정상적인 삶의 괴도에서 이탈되고 말았다. 이탈된 궤도이나 또다른 길을 만들어가며 살아온 지 20년째다.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지만 나는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다. 손목 잡혀 온 아이들이 중년에 이르자 이젠 엄마 아빠의 보호자 역할을 할만큼 철이 들었다. 


 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귀한 친구도 만났다. 이민목회 20여년 동안, 진정한 신앙동지이며 우정의 결정체를 생산해낸 그 열매가 C씨에게서 맺어졌다. 그래서 그이도 나도 외롭지 않다. 한 주에 한번씩은 풍성한 밥상을 준비하는 재미가 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주는 우리들의 친구와 함께함이 기쁨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이가 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목회현장을 떠나야 하는 아픔, 이민가정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갈파한 그가 만학이나 가족상담 전문가로서의 대학원 과정 이수 중 고속도로에서 트럭과의 충돌 사고는 그이를 반신장애자로 만들어 놓았다. 일생을 통하여 쌓아놓았던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꿈,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의 긴박한 상황에서 어둡고 긴 터널을 거쳐 오는 동안 형벌처럼 다가왔던 그 두려움은 마침내 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들 하나님의 손길이 지켜주고 있었다. 


 그이를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사람 같다. 내가 더 이상 그이의 간병사로 자격상실 판정되면 스스로 장기요양원으로 가겠다는 심중을 때때로 토로한다. 내 건강을 챙기고 그이의 건강관리에 힘을 기울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생활패턴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이가 사경을 헤맬 때도, 반신을 못 쓰게 되어 요양원을 찾아야 할 각오를 해야했었을 때도, 이건 절대 불가하다는 나의 결심은 내 에너지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여 그이의 회복을 위한 사투(死鬪)도 마지않았던 것이다. 


 지적인 기능은 점점 쇠퇴해가는 그이나 나에게 열려있는 남편의 가슴은 따뜻하기만 하다.마음껏 날을 수 있도록 숨고를 기회를 주고 있다. 그의 아내로서도, 내 이름 석자 달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줌이 그지없이 고맙다. 


 남편은 내가 정신적으로 깨어있게 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장거리 경주를 제대로 완주하려면 중간 중간 물도 마셔야 하고 숨도 고르며 달려야 끝까지 골인 할 수 있다. 평생 간병사 역할을 해야 할 장애인 가족은 마치 장거리경주 선수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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