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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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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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70년대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닐 때였는지 그 후였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어느 고등학교 친구가 동창 중 누가 신세계에서 신용카드라는 상품의 회원권을 판매하는데 그 세일즈 우먼으로 일한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 진학은 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가끔은 반에서 1, 2등을 하며 노력파에 억척스러운 면도 있는 아이였다. 그 당시만 해도 여자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가정 형편 때문이거나,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면 그저 대학을 나왔다 해도 좋은 신랑감 만나서 결혼하는 것을 제일로 꼽던 시절이었다.


 그런 사고에 젖어 있던 내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신용카드'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듣기는 했어도 이해가 빨리 되지를 않았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여고 동창생의 사회 진출은 조금은 극성스러운 여자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얼마 지나 남편이 신세계에 근무하고 있던 대학 친구가, 그 신용카드라는 것을 갖고 있으면서 또 직원에게는 몇 프로의 할인 혜택에 무이자로 삼 개월까지는 요금을 분할로도 가능하다고 해서, 그 친구 신용카드로 신세계에서 옷을 한 벌 사 입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 즈음 조금 지나 남편도 ‘신용카드’라는 것을 갖고 다니면서 현금 대신 카드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엔 카드가 발급되어 사용하는 것이 카드 가맹점이 미처 뒤따르지 못할 만큼 카드 사용을 만능으로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랬기에 어떤 때는 밖에 나가 현금 대신 카드를 내어 밀면 “우리 업소는 아직 카드를 받지 못하는데요.”하는 소리를 이따금 듣기도 하는 것이었다. 


 차츰 카드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엔 지갑에 돈을 두둑하게 넣어 가지고 다녀야 여유가 있어 보이던 사람들이 이젠 현금 대신에 신용 카드만 한 개, 차츰 몇 개씩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이 그 사람의 재정적인 능력을 은근히 과시하는 '명물'이 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가 점차 일반화되어 가면서 신용카드 한 두 개쯤 없는 사람은 그야말로 시대감각이 뒤떨어지거나, 말 그대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기 십상이었다. 


  남편이 신용카드를 하나 갖고 있으면서 나도 하나 해줄까 하고 언뜻 비치더니, 신용카드를 만들어 줌으로 해서 내게 보이지 않는 어깨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았는지, 쓸데없이 돈이나 더 쓰겠다 싶었는지, 내게 신용카드의 매력이나 위력은 안겨주고 싶지 않았는지, 내 기억으로는 남편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하고도 몇 년이 지난 다음 신용카드를 선물로 받았다. 


 결혼을 해서 신용카드 하나 없이 살다가 강남으로 이사를 해서 88년도쯤에 백화점 카드를 하나 갖게 되었다. 아파트 옆에 있던 뉴코아 백화점 신용카드 발급 창구를 찾아갔더니 개인에겐 재산세 납부 증명서와 주민등록 등본만 있으면 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대부분 남편의 직장과 직장 내에서의 직급 등으로 미루어 신용카드가 발급되곤 하는 것 같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남편이 자영업을 하고 있어 재산세 납부 증명서는 재정 상태가 가늠이 되는 것이어서 그쪽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백화점 신용카드를 하나 취득하게 되었다. 


아마 그 즈음 남편에게서도 마스터 카드 하나를 선사 받아 뉴코아 백화점이 아닌 곳에서는 마스터 카드를 쓰게 되니 현찰은 거의 쓰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 즈음엔 이미 카드도 실버니 골드니 일반회원이니 하는 식으로 구별이 되기 시작해서 물건을 구입한 후 카드만 내어 밀어도 이미 상대의 신분이나 재정 상태가 짐작이 가는 터여서 종업원도 그 카드 여하에 따라 상대에게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라진다. 


 우리네 속담에 ‘외상은 남의 소도 잡아먹는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난 그때부터 그런 습성이 생긴 것 같다. 


 카드를 사용하기 그 이전엔 어림도 없었을 터인데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한 후로는 현찰, 즉 현금을 낼 때는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카드를 쓰고 난 후 카드 대금을 지불하는 돈은 으레 내는 것인 줄 알고 아까운 마음이 덜 드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사람은 나중에 카드 대금을 내는 것은 딴 돈 들어가는 것 같아 더 아까워 가급적이면 카드를 쓰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외상 심리’가 내겐 더 작용을 하는지 현금보다는 신용 카드를 더 애용하곤 한다. 


 그 즈음엔 다시 카드 발급하는 회사도 많아져 지갑을 열면 은근히 여러 개의 카드가 ‘나보란’듯이 꽂혀 있어야 과시하는데 힘을 실어주기까지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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