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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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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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그래서 그 다음엔 영어 학교를 다닐 때 이번이 기회이다 싶어 영어 선생님께 싸인 좀 멋지게 해보고 싶은데 내 이름자 가지고 어떻게 써볼 수 있겠나 여쭤 보았건만 선생님께 별다른 소득도 보지 못하고 이젠 하나의 일관된 싸인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또 싸인이란 말 대신에 이니셜로 쓰라는 얘기가 있다. 이니셜은 영문자에서 앞 뒤 한자씩으로 간단하게 써넣는 것으로 정착을 하였으나 난 그 싸인이란 것을 한국에서 쓰기 시작해서 꽤 여러 해를 거듭해서 하나의 싸인을 제대로 만들어 내었으니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싸인도 이렇게 시행착오를 하였는데, 그 싸인은 곧 나의 이름이요, 나 자신 일터이니 신용카드를 쓰고 난 후나 은행에서 쓰는 싸인이 아닌 내 이름자로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싸인이 되어야겠다 싶으니 다시 또 싸인을 만들어 내었던 과정만큼이나 묵직하게 자리잡아 온다. 


 예전부터 남의 빚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얘기할 만큼 ‘빚보증’이란 말 그대로 남의 돈을 빌려 쓰는 일에 보증을 서면서 만약 상대가 그 돈을 갚지 못했을 경우엔 그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서명이나 다를 바 없다. 애초부터 빚보증을 부탁하는 사람에게 그 짐을 지우려는 것이야 당연히 아니지만 더러는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서게 됨으로 해서 아닌 게 아니라 팔자가,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도 더러는 있으니 오죽해야 남의 빚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극언까지 나왔을까 싶다. 


남에게 빚보증을 부탁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면 어쨌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해 보고자 방법을 강구하다 보니 그런 와중에 남에게 어려운, 해서는 안 되는 부탁도 하게 되는 것인데 빚보증을 부탁하는 사람만큼이나 부탁 받은 사람도 답변을 해주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친척 중에 딸 둘과 장애자 아들과 같이 사는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직장을 꾸준하게 다니는 것 같은데 가세가 무척 곤궁한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꽤 오래 전에 빚보증을 잘못 서게 되어 그때까지 그 빚을 갚느라 여유가 없다고 했다. 


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와 성씨가 같기도 했는데 거의 10년도 넘는 세월 동안 내가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그 빚으로 인해 가세가 필수도 없었건만, 그로 인해 원망이나 찌그러지고 뒤틀린 심사가 느껴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분이다.


그 분은 약주를 워낙 좋아하셨는데 착하고 바른 심성 덕분인지 소아마비 자식, 소아마비 동생이건만 식구들 모두 그 동생을 끔찍이도 위하고 남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내보이며 살았던 그 가족의 성품이 더 인상적이어서 타고난 심성, 바탕이 고운 모양이라며 가슴에 새기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젠 신용카드라는 것이 나오고 보니 어찌 보면 남에게 꺼내기 어려워 망설여지고 힘들었던 그런 요인들이 좀은 수월해졌다 싶기도 해서 내가 물건을 외상으로 사고 내가 갚겠다는 싸인을 하고, 현금으로 인출해서 쓰고 하다 보니 ‘카드빚’은 점차 늘어나고 있건만 남에게 부탁을, 남에게 어려운 얘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니, 심적인 부담이 그만큼 적기에 본인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카드빚이 늘어가기가 십상이다.


 이를테면 내가 쓰는 빚을 내가 써주는 그 싸인이라는 것으로 해서 늘어만 가게 되었으니 남의 빚보증을 서는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내가 그 자신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때로는 카드를 쓰고 싸인을 하고 돌아서며 내가 지금 이것을 카드로 꼭 써야만 했는가 하고 살펴보게 됨은 그나마 ‘카드빚’을 좀 줄이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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