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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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너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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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아이가 자다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할머니 얼굴을 완전히 익히지도 못한 상태에서 몇 주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나를 낯설어 하며 엄마한테 안기던 손녀딸이 얼마나 서운하던지, 난 그만 가야겠다며 딸아이에게 더 자라고 하며 휑하니 딸네 집을 나섰다. 


 어느덧 돌을 지나 20개월 가까이 되다보니 엄마 아빠 소리는 물론이요 나에겐 “할미할미”하며 두 팔 벌려 안겨온다. 어떤 날은 유모차에 무표정하게 그냥 앉아있기도, 어떤 날은 할미하며 자그똥자그똥 걸어오기도 한다. 


 할머니를 모르는 아이처럼 무표정하게 앉아 있을 땐 내 마음도 무덤덤해지고, 할미할미하며 팔을 벌려 아장걸음으로 다가오는 아이를 볼 때면 마음은 어느 사이 포근해져 “서진아, 어서 오라”며 덥석 안게 된다. 


 그런데 가끔은 엄마한테 떼를 쓰며 운다.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아이는 엄마를 보챈다. 그럴 때면 나 같다면 소리라도 지르고 한 대 때려주기도 하겠건만, 딸아이는 “노노” 하며 아이를 달래곤 한다. 


 그 순간 난 아이가 더 이상 예쁘지 않다. 제발 어서 빨리 울음을 그치고 떼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순간 또 스치는 얘기가 있다. 우리 딸도 내게 그런 순간이 있었던지 친정엄마가 아무리 “손녀딸이지만 에미를 귀찮게 해서 밉다”고 하던 말이 떠오른다. 나와 엄마의 감정상태가 비슷했겠지 싶은 생각을 해본다. 


 요즈음 우리 나이가 친구들을 만나면 손주들 자랑이 늘어져 돈을 내놓고 하라고 한단다. 흔히 얘기하기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무슨 짓을 해도 예쁘기만 하다고 하니, 그들 감정이 풍부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것인지, 내가 예민한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인간의 감정은 아이나 어른이나 ‘예쁜 짓’을 할 때 내 마음도 다가가고 좋아지는 것이지, 미운 짓을 할 땐 가던 마음도 멈추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그렇게 집에 와서 있다가 내가 가게에 나갈 시간이 되어 현관을 나서니 할미를 부르며 쫄랑쫄랑 쫓아 나와도 그래도 할머니가 저를 두고 가는 줄 알고 나중에는 ‘아앙’하고 우는 것이었다. 딸아이 말로는 이내 그쳤다고 하는데 아이의 그럴 때 마음 상태와 나의 마음은 어떠했나 살펴보기도 한다.


 아이가 ‘아앙’하고 울던 모습이 떠올라 아이의 여린 가슴에 작은 생채기라도 나지 않았으려나 어루만져 주고 싶기도 해서 작정하고 나가서 아이의 여름옷을 몇 벌 사서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의 기복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큰딸이 내게 말하기를, 손녀딸이 제 아빠한테 “아빠 안 좋아 고고”하며 엄마한테 안기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 아빠가 서운해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외가 고민이라고 까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위한테 아이가 그렇게 말을 하니 얼마나 서운하냐고 하며, 아빠가 서진이를 얼마나 예뻐하고 잘해 주는데 아이가 왜 그럴까 궁금해서 물어 봤더니, 얼마 전에 고집을 부리기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더니 아이로서는 못내 마음에 맺혔던 모양이라고 한다.


 아이는 어느 사이 27개월이 되었는데 감정표현을 확실하게 한다. 밖에 나갈 때면 꼭 입고 싶은 옷만 고집을 해서 벌써부터 옷 입히는 것이 신경 쓰인다고 한다. 아이를 보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렇다면 버릇만 그 어린 나이에 굳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지능이나 감성, 심리적인 정서도 아울러 키워지며 여물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난 학교 들어가기 전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나도 분명 그 나이를 거쳐 왔건만 역시 내 감정상태를 알 수 있긴 하지만, 과연 내 마음상태를 얼마나 표현 할 수 있을까. 그러니 그 어린 아이의 감정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된다. 기쁨, 슬픔, 시샘, 증오 등. 부디 우리 손녀는 감정은 풍부하되, 감정의 변화가 아주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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