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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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해지는 마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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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순이가 입덧이 끝나가는가 보다. 잘 먹지 않던 밥도, 그 동안 먹지 않던 것들도 먹고 또 먹으려 한다. 그 전엔 야채는 별로 먹지 않았는데 시장을 봐온 봉지에 있는 무청 잎까지 야금야금 먹는다. 어디 그뿐인가. 먹어도 배가 고픈지 내가 집에 들어가면 배가 고프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이젠 입맛이 돌아오기도 또 허기가 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또한 몸도 조금씩 무거워지면서 컨디션도 정상이 아닌지 삼순이가 배설해 놓은 똥까지 먹는 데야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을 키우는 동안 그런 일은 없었는데 집안에 실례를 해 놓고는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인지, 식구들한테 혼이 날까 두려워 먹어 치우는지 알 수 없다. 바깥에 나가서 볼일을 보고 있는 동안 내가 빨리 보지 못하면 어느 사이 배설해 놓은 똥까지 먹어 몇 번을 기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삼순이 젖을 보니 확실히 더 커지고 분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삼순이 배가 점차 불러오다 보니 몸도 많이 무거워지는가 보다. 아침에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좀 더 걸어보고 싶어도 삼순이는 조금 따라 오다가 자리에 멈추어 서서 조금은 서운해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마치 엄마는 삼순이 배가 불러 걷기도 힘든데 너무 몰라 줘서 서운하다는 듯. 


 난 럭키와 앞서 걸으면서 “삼순아, 너 운동도 좀 해야 되거든 빨리 따라와” 하며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어떤 날은 마지못해 따라 오거나, 어떤 날은 아예 자리에 멈추어 서서 꼼짝도 않는다. 그런 삼순이를 두고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며 들어오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추석날이어서 차를 타고 개 세 마리를 데리고 하이 팍(토론토 시내에 있는 공원)을 갔다. 그곳에는 개들을 따로 풀어 놓을 수 있는 곳도 있어 데리고 갔다. 그렇게 밖으로 데리고 나갔을 때 다른 개들을 보고 우리 개들을 보면 서로 비교가 되기도 한다. 


 큰 딸이 하는 얘기가 우리 개들은 다른 개들과 같이 잘 어울리지를 못한다고 한다. 그 중에도 럭키는 사나운 척해도 다른 개들이 있으면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데로 간다더니 혼자 다른데 가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물론 삼순이는 내 옆에 앉아 있고 벼락이도 대체로 얌전한 편이다. 


 그곳에서 빠져 나오며 벼락이와 럭키의 개 줄을 잡고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삼순이는 개 줄을 묶지 않고 나와 같이 걷고 있었는데 멀리 나온 것을 아는지 열심히 따라서 걷기는 하는데 부른 배를 안고 따라 걷는 모습이 더없이 처연해 보인다. 


 영락없이 나이 들어 얼굴모습도 추루한데다 임신까지 한 여자의 힘들어하는 낯빛처럼 그렇게 보인다. 밖으로 나가면 그 추루해 보이는 것도 안쓰럽고 마음이 싸한데 그런 모습을 집에서도 종종 느끼곤 한다. 


 삼순이가 좀 겁이 많기도 해서 계단을 오르려고 할 때는 자세를 몇 번씩 발을 구르듯 호흡을 가다듬는 듯 하는데, 그럼에도 어떤 때는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오다가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삼순이를 안아보면 가슴이 마구 뛰곤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정말 겁이 나는지 계단 밑에서 오르지도 내려오지도 못하고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삼순이가 더 없이 처연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외출하고 들어와 개들 발을 씻기려 욕실을 가려는데 삼순이가 먼저 거실 쪽으로 또르르 내려갔다. 럭키 줄을 잡고 삼순아 가서 발 씻자며 삼순이를 쳐다보니 어느 사이 소파 방석 위에 똥을 싸 놓고 그것을 먹고 있었다. 난 잽싸게 달려가서 못하게 했다. 


 삼순이가 새끼를 갖고부터 벌써 몇 번째 똥을 먹곤 한다. 삼순이가 똥을 먹는 것을 아는 작은 딸이 삼순이를 데려 온 사람에게 얘기를 했는가 보다. 그랬더니 삼순이 먼저 주인이 하는 얘기가 새끼를 낳고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니, 돌이켜보니 삼순이가 똥을 먹기 시작 한 것이 새끼를 낳기 얼마 전부터이니 미리 예행연습을 했는가 보다.


 새끼를 낳고 보니 태반에서부터 새끼가 쓰고 나왔던 하얀 막까지 다 먹고 새끼들 오줌똥도 다 먹는다. 새끼들을 낳고 새끼들이 배설해 놓은 것을 치우려 휴지를 찾는 동안 삼순이가 어느새 그 배설해 놓은 것을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런 삼순이가 더없이 측은해 보일 때가 있다. 


 어느 사이 삼순이가 새끼를 낳고 새끼들이 젖을 빨아 대면 때로는 힘도 드는지 헉헉댄다. 그럴 때면 측은해서 삼순이 새끼들 다섯 마리나 젖을 먹이려니 힘이 드는가 보구나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새끼들이 젖을 양껏 먹었는지 각자 떨어져서 잠을 잘 때 되면 이제 새끼들 배고픈 것은 해결해 주었으니 난 좀 쉬어야 되겠다 싶은지 옆으로 가서 벌렁 누워 있는 모습이 더없이 측은하다. 


 그렇게 새끼들 젖을 먹이느라 발갛던 젖꼭지는 새카맣고 주변도 검붉다. 새끼들이 어찌나 젖을 힘차게 빨아대는지 처음 한 두 주는 배가 온통 푸르딩딩 하였다. 뱃살도 새끼를 낳기 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젖이 멍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이 늘어져 걸을 때도 출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삼순이를 안아 보면 허깨비처럼 가뿐하다. 새끼들 아비인 럭키는 살이 더 쪄서 뒤룩뒤룩하는 것과는 판이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또한 측은해진다. 밖으로 나갔다가도 볼일만 급하게 보고는 서둘러 들어와서 새끼들에게로 가면 다섯 마리가 달려들어 사정없이 젖을 빨아대면, 미처 앉지도 못하고 있다가 점차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누워 있는 삼순이가 안쓰럽기만 하다. 


 방에서 나와 같이 자고 있다가도 새벽이면 새끼들 소리를 듣기도,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새끼들이 염려가 되는지 새끼들 있는 데로 가려는 기세지만 어떤 날은 계단 앞에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안고 내려가기도 하는데 다시 내려가서는 이미 새끼 다섯 마리가 일어나서 놀고 있기도, 젖을 찾느라 찍찍 소리를 내면 새끼들 곁으로 가기도 해야겠고, 볼일도 급해져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애가 달아 하는 모습도 또한 안쓰럽다. 그런 날은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오줌만 누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려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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