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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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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미합중국 대통령(20)-제임스 넉스 포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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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오리건 조약(1846)

1819년 애덤스-오니스조약 이후 러시아의 남부 이하 오리건 지역은 미국과 영국의 공동구역으로 사용되었다. 정착인이 몰리면서 미국은 이 지역의 국경을 북위 49도선으로 제안했으나 영국은 받아드리지 않았다.

 

1845년 알래스카 남부 북위 54도40분까지 오리건 전 지역을 차지하자는 미국의 여론이 발표되면서 양국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포크는 국경을 북위 49도로 제안하며 이를 위해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파케넘 미국 주재 영국대사는 계속 받아드리지 않고 거절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에버딘 영국 외무성 장관은 미국과 오리건 지역 분쟁보다는 자유무역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여 파케넘은 밴쿠버섬을 제외한 북위 49도선을 수정 제안하여 포크는 상원의 지지를 받고 1846년 6월 15일 오리건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으로 오리건주 북쪽은 현재 캐나다 B.C주가 되었고 미국은 태평양으로 첫 디딤돌을 만들었다.

 

멕시코 전쟁(1845-1848)

1845년 3월 1일 잔 타일러가 텍사스 영입을 서명한지 3일 후에 취임한 포크는 동년 7월에 재확인 회의를 거처 12월 29일 텍사스를 29번째 미연방 주로 등록했다.

 

이로 인해 텍사스주 독립을 반대했던 멕시코는 리오그란데강 지역에서 분쟁의 실마리를 찾고 있었고, 이를 감지한 포크는 자커리 테일러 육군준장과 데이빗 커너 해군준장을 멕시코만에 파병하여 무력을 과시하며 12월 말 잔 시들 미 대사를 멕시코에 파견하여 뉴 멕시코와 캘리포니아 지역을 3천만 달러에 구입요청을 했으나 호세 헤레라 맥시코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협상 중 헤레라는 마리아노 파라데스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고 정권을 잡은 파라데스는 텍사스 독립을 파기하는 성명서를 내어 멕시코 전쟁에 불을 지폈다.

 

멕시코만으로 흐르는 뉴세스강에서 북서쪽으로 487km 떨어진 리오그란데강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멕시코와 미국은 텍사스 영입 이후 토지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1846년 1월 13일 포크는 테일러 군을 동원하여 리오그란데강 지역을 점령하여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1846년 7월 포크는 알렉샌더 멕켄지를 쿠바에 파견하여 망명 중인 안토니오 산타에나 전 멕시코대통령과 협약을 맺게 하였다.

 

협약내용은 미국이 쿠바의 지원으로 산타에나를 멕시코에 귀국시키면 군을 장악하고 대통령직에 복귀하여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지역을 미국에 매도하는 것이었다.

 

이 제의를 받아드린 산타에나는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의병을 일으켜 협상추진 대신 미군을 맹공격했다. 협상에 무리수를 쓴 사실을 인정한 포크는 멕시코 점령계획을 세우고 군을 동원하여 멕시코만의 베라쿠루즈를 점령하고 서북쪽으로 404km 떨어진 멕시코시를 향한 진군준비를 했다.

 

1846년 10월 텍사스에서 남쪽으로 진군하던 테일러는 멕시코 북쪽 910km 떨어진 만트레이에서 멕시코군을 패배시켰으나 항복대신 도주하게 만들었다. 포크는 테일러를 만트레이에 머물게 하고 스캇 장군이 베라쿠루즈를 통해 멕시코시를 향한 진군명령을 내렸다.

 

테일러는 포크의 명령을 어기고 70km 남쪽으로 계속 남진하여 사티로시를 점령하고 멕시코시 북부 32km 떨어진 부에나비스타에서 산타에나와 전투를 벌였다. 전투 초에는 패배했으나 테일러는 전투를 역전시켜 산타에나를 격퇴시키게 되어 큰 공을 세웠다.

 

한편 베라쿠루즈를 통해 진격한 스캇은 11월 멕시코시에서 22km 거리의 콘트레라스전투와 11km 거리의 추룹시코전투에서 산타에나를 패배시키고 멕시코시 문턱에서 멕시코정부의 협상을 기다렸다. 산타에나는 테일러와 전투에 패배하여 약해진 상태였다.

 

구아두루프 히달고 조약(1848)

포크는 니콜라스 트리스트 외교관을 파견하여 멕시코 근교의 구아두루프 히달고에서 1847년 11월부터 3개월간 협상한 끝에 1848년 2월 2일 구아두루프 히달고 조약에 서명했다.

 

서명내용은 멕시코가 1. 샌디에고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전역, 2. 뉴멕시쿄 전역, 3. 리오그란데 지역을 포함한 텍사스 지역을 1500만 달러를 받고 미합중국에 매도하는 것이었다.

 

사실 패전으로 1500만 달러로 깎여 받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포크는 멕시코전역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언어와 풍습이 달라 미국에 합병을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의 의견을 따랐다.

 

3월 10일 포크는 미 상원의 구아두루프 히달고 조약 승인을 받았고, 1848년 7월 4일 72주년 미 독립기념일에 대서양에서 태평양연안까지 1백만 평방마일 이상의 미 영토를 확장하는 조약은 실효에 들어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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