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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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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캐나다 침략(10)-미 독립전쟁 전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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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1777년 10월7일 비머스 하이트전투에서 후퇴한 버고인 영군은 400여명의 군사를 잃은 반면 200여명의 희생자를 내고 영군을 퇴치시킨 미군은 사기충천한 의용군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결과적으로 전투할 수 있는 4,000여명의 영군은 15,000명 이상의 미군에게 완전 포위당했고 군 식량과 보급품 단절로 절망상태에 빠졌다.

 

버고인 영군의 항복(1777년 10월17일)

프리맨전투와 비머스 하이츠전투를 제1, 제2의 새라토가전투라고 알려졌고 통틀어 새라토가전투라 부른다. 이 전투에서 영군은 440여명의 전사자와 약600명의 부상자를 냈고, 미군은 90여명의 전사자와 400여명이 부상자를 냈다.

버고인은 10월 13일 참모회의를 열고 치욕적인 항복을 결정하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영군을 영국에 귀국시키면 그들은 북미전장에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항복조건을 걸었지만 게이츠는 영군을 보스턴 포로수용소로 옮긴 후에 영국으로 보내겠다는 조건으로 10월17일 항복선언식을 거행했다.

항복선언식에서 패장인 버고인은 그의 검을 게이츠에게 넘기려 했지만 게이츠는 버고인의 명예를 고려해서 수검을 사양했다.

미 연방상원은 워싱턴과 합의하에 게이츠의 새라토가전투의 항복조건을 번복하고, 미 독립전쟁이 끝날 때까지 6,222명의 버고인 패전군을 보스턴 수용소에 감금했다.

 

새라토가전투 승리의 여파

새라토가 전승소식은 영국뿐 아니라 전 유럽에 퍼져 조오지 3세와 영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영제국의 프라이드가 땅에 떨어진 것은 물론 7년 전쟁의 패배로 원한을 품고 있던 루이 16세와 프랑스국민은 자국의 승리처럼 통쾌함을 만끽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비밀리에 미 독립군에게 무기 및 자금으로만 도와왔던 루이16세를 설득하여 1778년 2월 6일 프랑스가 미국 독립인정은 물론 교역과 군사동맹을 맺게 하였다.

그리고 곧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에 힘입은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미불동맹에 가담하여 1781년 10월19일 워싱턴 연합총사령관이 요크타운에서 콘월리스 영국 총사령관을 항복시켜 미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결국 미국의 캐나다 침략과정이 가져온 승리라 할 수 있다.

 

애국심과 명예욕과 금전욕

게이츠는 새라토가 전승소식을 워싱턴 총사령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상원에 보고하여 자신의 명예욕을 충족시켰다. 또한 칸웨이 커밸 장성과 함께 상원으로 하여금 워싱턴을 밀어내고 자신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모의하다가 워싱턴에게 발각되었다.

워싱턴은 게이츠가 총사령관이 되면 사임을 하겠다고 응수하여 결국 상원은 사표를 수락하지 않고 게이츠를 남부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새라토가 전투에서 승리의 찬사를 혼자 받은 게이츠는 군사 4,000여명을 거느리고 1780년 8월16일 사우스 케럴라이나 켐든전투를 지휘했으나 찰스 콘월리스 중장이 이끄는 2100여명의 영군에게 섬멸 당했다.

항상 후방에서 전투지휘를 하던 게이츠는 전방이 흐트러지자 빠른 말을 타고 97km의 장거리를 단시간에 단신으로 뺑소니쳤다. 그는 워싱턴이 미 독립을 위하여 휘하의 명장들을 게이츠군에 보내 새라토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의 애국심에 의한 용병술을 이해 못했던 것이었다.

이후 게이츠는 모든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다행히 군법에 처리되지 않고 워싱턴 휘하에서 비전투담당직을 맡았다.

한편 용맹을 떨치던 아놀드는 5개월 이상 다리를 치료하고 상원으로부터 계급승진을 받았다.

아놀드는 워싱턴의 명령으로 영 해군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 웨스트 포인트 요새 구축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돈이 필요한 아놀드는 영군과 내통하여 웨스포인트를 영국에 내주는 대가로 20,000 파운드를 요구하다가 1780년 9월 21일 워싱턴군에 발각되어 아놀드는 영국으로 도주하였고 반역자의 낙인이 찍혔다.

재치 있는 조각가가 새라토가 전쟁터에 참전장성들의 동상을 세웠지만 아놀드동상 대신 그의 장화만 조각했다. 반역자였지만 그의 전공은 인정해주는 뜻이다.

워싱턴의 애국심은 후세에도 교훈이 되어 군인은 충성심을 키우고 군 통수권자는 물론 미국민은 군인을 존중한다. 유나이티드 항공사를 비롯한 미 항공사는 미 공항에서 정복을 입은 미군들에게 일등석과 같은 탑승수위를 공항내 방송으로 알린다. 이 방송을 듣는 미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를 방위하는 군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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