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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건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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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석기시대 때부터 인류의 생활도구로 사용되었다. 바로 화산폭발 등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흑요석과 같은 유리질 광석이 전세계에 걸쳐 활촉이나 칼과 같은 Sharp Cutting Tools와 장식품으로 쓰여졌던 것이다. 


 인류가 직접 유리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5세기 경 이집트에서부터였는데, 이 때 만들어졌던 고대 유리는 소다석회 유리로서 성분조성이 오늘날 상용되는 유리 조성과 아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투명한 유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서 Blowing Pipe법이 발명되면서부터였다. 이 획기적 발명에 의해 개선된 유리 가마는 유리를 고온에서 융용하여 성형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 기술은 이후 거의 2000년 이상 유지되었다. 이렇게 일단 투명한 유리가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유리를 창에 끼워 채광과 방풍 효과를 동시에 누리고자 여러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나Blowing Pipe법으로는 평평한 유리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리병의 바닥을 잘라 벽에 끼우거나 유리의 가느다란 조각들을 틀에 끼워 창으로 사용하였다.  


 이후로 판장으로 된 유리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었다. 4세기 초엽, 로마인 Jerome의 책자에는 묽게 녹은 유리를 크고 평탄한 돌 위에 흘려 판유리를 만드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당시 이 방법에 의해 평면의 유리를 제조할 수 있게 되었으나 투명도가 좋지 않고, 서냉(annealing)이 되지 않아 파손이 쉽고, 큰 유리를 만들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각종 색유리 조각을 이용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원의 창 등에 많이 사용되는 한편 평판 유리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당시 평판 유리는 유리 덩어리를 다리미로 눌러 만들었는데, 사치품으로 여겨져 창유리 사용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었고 워낙 비싸서 귀족들만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5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오스트리아 빈의 가옥의 절반이 유리창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창유리에 대한 보급이 확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16세기 초에 이르러 베니스의 Dal Gallo 형제에 의해 은경반응법(銀鏡反應法)에 의한 거울 제작법이 발명되자 거울의 제작법을 배우려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경합을 벌이게 되면서 유리제작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된 점이다. 특히 프랑스의 전제 군주 루이 14세는 거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프랑스가 자체적으로 유리와 거울을 제작할 수 있도록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루이 14세는1665년 왕립제경소인 <Saint Gobain社>를 설립하여 무라노섬에서 데려온 유리기술자를 이용, 거울을 제조하게 하였다. 이후 그는1678년에 건축가 망사르(Mansart)에게 지시하여 당시까지 여름별장으로 쓰이던 베르사이유 궁전의 증축공사를 시행하였다. 이 공사를 통해 정원 쪽 2층에 기둥이 받치고 있던 이탈리아식 테라스를 거대한 회랑 모양의 방으로 만들었고, 이 호화로운 방에 거대한 거울을 설치하여 <거울의 방(Galerie des Glaces)>이라 부르게 되었다. 


 거울의 방에는 전신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과 더불어 정원 쪽으로 무려 17개나 되는 아치형의 대형 유리 창문을 설치하였다. 당시 4m² 크기의 유리가격이 유리기술자 한 사람의 4만 시간의 임금에 상당하였다고 하니 베르사이유 궁전의 사치스러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는 유럽 제일의 마판(磨板)유리, 거울의 생산국이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유리가 건축자재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자 판유리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어 공업화에 의한 대량 생산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마침 18세기경 유리물을 용융금속 위에 떠오르게 하여 용융금속 표면과 완전 평면상태를 이룬 상태에서 판상으로 유리를 인출하는 플로트 공법(Float Processing)이 개발되었고,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유리의 원료와 연료의 개선, 축열식 가열법을 이용한 용해로(Melting Furnace) 의 개선 등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유리의용융(熔融)이 보다 용이해졌고 또한 연소효율도 높아지게 되었다. 또한 1873년 벨기에에서 연속식 용해로가 만들어지자 비로소 유리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리를 만드는 사람들(Glass Blowers)>, 고대 이집트의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에 해당하는 고분 벽화(기원전 2686년~기원전 1782년 사이) 

 

 

 
고대 이집트 신왕조 때의 유리 용기(기원전 1500~기원전 1000)

 

201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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