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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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생애(1)-가나안 정복을 명령받는 여호수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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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여호수아는 40년 간 모세를 보좌하면서 지도자로서의 품성과 능력을 양성하고 길렀을 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체험한 잘 준비된 지도자였다.

그러나 짝을 찾을 수 없이 큰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죽고, 그를 대신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 강변에 섰을 때 여호수아는 한없이 두렵고 떨렸다.

모세의 곁에서 그를 보필할 때는 그의 명을 받들어 행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의 판단과 결정에 이스라엘의 운명이 달렸다는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사명의식이 그에게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그와 같은 마음을 잘 알고 계셨지만 “이제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모세의 후계자로서의 그의 사명을 들려주신 것이다.

그런 후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이 닿는 곳마다 그 땅을 다 너희에게 주겠다.”고 선언하셨다.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그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계속하여 하나님께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 말씀하신 것은 그가 여호수아와 동행하며 그를 대적하는 모든 적들을 물리쳐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하신 후 하나님은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3번이나 반복하셨다. (수 1: 6, 7, 9)

하나님께서 싸워주시면 승리는 그의 것임을 확신했던 모세가 민족의 해방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지켜본 여호수아였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와 동행하며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을 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 백배하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갈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같은 여호수아의 결단을 보며 우리들은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시는 예수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 없이 우리 앞에 놓인 “좁은 길”을 걸어야 할 줄 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복음의 깃발을 들고 온갖 핍박을 감수하며 땅 끝까지 달린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말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으로 진격하기 위해 취한 첫 번째 조처는 군량미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련한 군량미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가서 첫 유월절을 지키기까지는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백성들에게 양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후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가나안 정복의 선두에 서라고 명령한다. 모세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격파했을 때 그들 지파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앞장서겠다고 자원했었기 때문이다. (민 32:16-27)

군량미를 비축하고 선봉부대 편성을 마친 여호수아는 첩자 2명을 여리고 성으로 잠입시킨다. 모세의 후계자다운 치밀하면서도 용의주도한 공격준비였다. 여호수아가 첩자들을 보낸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관문과 같은 곳으로 기원전 9,000년경에 형성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이다.

이 성은 육중한 성문과 높고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중의 요새였다. 여리고는 두께가 2미터이며, 높이가 10미터인 외부 성벽과 두께 4미터, 높이 10미터의 내부 성벽으로 되어 있어서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성 안에는 수원이 풍부했으며,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는 봄 추수가 막 끝난 후여서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만 하면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함락시킬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이스라엘이 200만이 넘는 대 집단이요, 전투능력이 있는 장정만도 60만이 넘지만 무장도 빈약하고, 성 공격에 필요한 중장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경험도 부족한 그들로서는 점령하기 힘든 성이 여리고 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우회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복하기 힘든 성 여리고를 점령하려 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우선, 여리고는 가나안의 출입구였다. 또한 여리고는 인체로 치면 허리에 해당하는 가나안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여리고를 확보하면 가나안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을 수 있었다. 실제로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장악하자 가나안 족속들은 남부 가나안과 북부 가나안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했다.

그 때문에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정착한 이방 족속들을 일일이 정복하지 않고, 남북 연합군만을 격파하면 되었다. 여호수아가 숱한 이방 민족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가나안을 불과 7년 만에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리고를 장악함으로 가나안을 남과 북으로 분리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전략적 요충지대가 여리고였기에 여호수아는 이 성을 실수 없이 함락시킬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해 유능한 첩자들을 성내로 침투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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