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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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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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겨울 해가 검은 구름에 가려져 어둠이 더 빨리 내리듯이 2021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이때 들려오는 성탄 노래들을 들으며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생활의 질서가 모두 무너져 버렸지만 성탄절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노라면 불안과 두려움에 쌓인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찾아 들기 때문이다.

성탄절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주며, 절망과 낙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삶의 의욕을 일으켜 주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명절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일까?

성탄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뿐인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은 경천동지할 사실로서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그와 같은 일은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를 마리아가 해산하던 밤, 하나님의 천사가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내가 너희에게 모든 백성들이 크게 기뻐할 소식을 전하니 오늘 밤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그 분이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 전해준다.

그 말을 들은 목자들이 두려워할 때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캄캄한 밤하늘을 밝히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라 노래한다.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간 후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들이 들려준 말을 전한다. 베들레헴 성 밖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구세주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천사들로부터 듣기 열 달 전, 유대 땅 나사렛에 살던 순박한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해준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에 공의의 하나님은 죄 범한 인간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그로 하여금 인간이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을 대신 받게 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신다. 이 같은 하나님의 계획은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축출하실 때부터 세우신 것이다.

“오실 예수님에 대한 책”이라 불려질 정도로 구약에는 메시아에 대한 기록이 많기만 한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들 중 대표적인 것 둘을 들라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와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가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사님이시라.”이다.

인류구원의 계획을 이루실 분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어야 하겠기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신분으로 세상에 내려갈 수 있도록 남자를 모르는 여인에게서 태어나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을 여자로는 마리아를 선택하셨다.

순진한 시골 처녀 마리아는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움과 두려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목수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동침은 안 한 그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녀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축복되고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저는 주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 말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한없이 축복된 것이면서도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구세주의 인간 어머니가 된다는 것처럼 영광된 일은 없었지만 처녀가 아이를 낳았을 때 받아야 할 세상의 멸시와 천대와 조롱으로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파탄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비천한 그녀에게 구세주의 인간 어머니가 되도록 축복해 주셨으니 기쁘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겠다고 답한 것이다. 이 같은 마리아의 믿음과 용기를 아셨기에 하나님은 그녀에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어 양육하는 사명을 부여한 것 아니셨을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대한 인류구원 계획은 그의 시간표에 따라 그 계획을 수행할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이 날을 우리는 성탄일 혹은 크리스마스라 부르며 경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신 날이 국가와 민족과 인종을 초월하여 세상 만민의 경축일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성탄일을 분기점으로 인류의 역사가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한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 값인 사망의 형벌을 당하셨다.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에서 면제되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33년간 인간 세상에 머무시면서 그를 구세주로 받아드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심으로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을 이루어드린 것이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전파한 천국복음은 세상의 제도와 구조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기원전의 인간 역사는 기원후부터 그 흐름을 완전히 달리하게 되었다.

수천 년을 줄기차게 흘러내리던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그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원인은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 째는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구원의 문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역사를 통하여 유대인들은 이방 민족들을 철저하게 경멸하며 배척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유대 민족은 이방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종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으며, 그들만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대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의 생각과 달랐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으며, 33년 동안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며 고난과 슬픔의 길을 걷다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에 동의하는 지적인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라는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드리는 믿음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가져온 두 번째의 큰 변화는 그때까지 세상의 기본질서로 굳게 서있던 남자와 여자 사이를 갈라놓았던 높고 두터운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도울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신 것은 그녀로 하여금 아담을 도와 생육하고 번성하며 그가 지으신 세상을 그가 원하시는 대로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남자와 여자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 아닌 상호협조의 관계를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하나님의 세계를 관리하는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도록 하신 것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나 사사시대의 드보라 같은 여성 지도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인의 인권이나 인격이 무시되었음은 물론 남자들의 종속물로 여겨졌던 존재가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통념이나 질서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깨져버리기 시작하여 여인들도 당당하게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과 모압 여인 룻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이방 여인들이다. 예수님의 조상에 이방 여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구세주의 출현과 더불어 인류는 시간과 공간은 물론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며,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님의 역사운영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심으로 생긴 세 번째 놀라운 변화는 죄인과 의인 사이를 막았던 높은 철책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불의와 불법을 행한 이들이 의인들의 대열에 섞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는 선언을 듣고 모여든 모든 사람들은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라 말해준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모여 성탄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탄을 경축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 방향을 달리한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사는 축복받은 존재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를 위해 오신 아기 예수를 가슴 깊은 곳에 모셔드리고 구원 받은 자가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을 실족하지 않고 걸을 결의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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