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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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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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은퇴하기 전에 함께 교회를 섬겼던 성도의 장례식에 갔었다.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마스크를 써서 알아보기 힘든 이들도 있었지만, 정다운 옛 교우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영결예배는 지루할 정도로 더디게 진행되었다. 순서를 맡은 분들이 너무 정성스럽게 많이 준비해 와서 그런지 순서 하나하나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집례자의 설교는 고인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었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이 인용하신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로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후일 다른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란 말씀을 읽은 후 천국환송 예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고인이 걷다 간 길을 따라가기 바란다는 권면을 했다.

고인은 올바르고 정의로운 길을 걸으며, 믿는 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생활을 했으니 그가 남기고 간 발자취를 따라 가면 보람된 인생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다는 취지의 설교였다.

목회자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인을 먼저 보내는 아쉬움과 남은 성도들이 그와 같이 주님께 충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설교였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살라.”는 권면을 들으면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은 가정에 충실했고,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으며, 불우한 이웃들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그런 긍정적인 면과 더불어 부정적인 요소들도 많았다. 내가 그로 인해 당한 어려움과 고통과 아픔도 적지는 않다.

때문에 그를 모두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신자였다고 하는 설교자의 말을 들으며 의아하게 느끼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신앙생활 할 때는 방관자로서 교회를 다니던 그가 내가 떠난 후 그처럼 유용한 일꾼으로 변했다면 나의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그가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사람이 되어 살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을 감사하며 돌아왔다.

그날 밤 난 누구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야 생명의 불길이 꺼지는 날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을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인격과 인간 됨됨이 다르게 형성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400여 년 전에 살았던 맹자의 어머니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공동묘지 근방에서 살다 저잣거리를 거쳐 서당이 있는 곳으로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겨가며 어린 아들 맹자가 학문을 탐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누구의 뒤를 따르는 가도 바람직한 성장과정 못지않게 중요하다. 꿀벌을 따라가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게 되지만, 파리 뒤를 쫓으면 더럽고 냄새 나는 곳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는 이 모든 사실들이 포괄적으로 압축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은 영어로 표현하면 “The way we should go."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걸어야 할 길이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걷기를 원하시는 길이다.

그 길만을 따라 걷기를 원한다면 누구의 뒤를 쫓아가야 할 것인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쫓아야 한다는 것이 그 해답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도와 천국복음을 선포할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학력이나 경력을 묻지 않으셨다. 그들이 그의 제자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들려주지 않으셨다. 단지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을 뿐이다.

성지순례를 갔을 때 갈릴리 호수 위에서 선상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하신 말씀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때 그를 따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주제로 택한 까닭은 간단하다. 우리가 천성 문에 도달할 때까지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가야만 한다는 진리를 예수께서 그 같이 명하신 갈릴리 호수에서 새롭게 깨달으며,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하셨던 예수님의 음성이 내게도 들려오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의 뒤를 따르라고 명하셨을 뿐 아니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구체적으로 그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는 법을 말씀해 주셨다.

그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은 그때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전력투구 했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부터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두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시다.

자신만을 위해 살다 하나님의 뜻만을 쫓아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날 결단을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참한 패배자가 되는 비운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누가 복음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님이 가장 믿고 사랑한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이 지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며 섬겼다. 그러나 그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십자가로 다가가시는 예수님에게 그가 영광의 자리에 앉으시는 날 그들 둘이 좌우에서 모시게 해달라고 청했다.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세상을 향한 그들의 욕망을 실현시켜 달라는 특청을 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슬프게 그들을 쳐다보시며 “너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구나.”라 말씀하신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또 하나는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것이다. 그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아 영광을 누리기를 원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은 그네들은 그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다고 하신 후 “너희는 내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로 물으셨다.

그와 함께 십자가의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의 뒤를 따를 수 없음을 밝혀주신 것이다. 주께서 가신 길은 가을의 오솔길 같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길이 아니었다. 넓고 평탄하게 잘 다듬어져 있어서 안전하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도 아니었다. 그 길은 좁고, 험하고,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아가며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놓아야 하는 눈물과 슬픔과 고통의 길이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의 칭찬과 박수갈채를 받음은 물론 부귀와 영화까지 누리면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한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순종의 믿음과 섬김의 자세 아닌 섬김을 받으며 지배자의 자세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 같은 사람들이 우리들 주위에 있다는 사실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손과 발에는 또 다른 못이 박혀지고, 주님의 목마름은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이 기다리는 하늘나라를 향해 진군하는 주님의 병사들이다. 우리가 승전가를 부르며 천국 문으로 들어가려면 예수님이 지셨던 고난과 슬픔과 멸시의 십자가를 지고 행군해야 하는 것이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려는 사람에게 승리의 면류관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귀한 진리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주님 가신 길을 걸어가므로 최후의 승리자가 된 인물이 사도 바울이다. 그는 철저한 율법주의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사명이라 굳게 믿었던 초대교회 최대의 적이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을 박멸한 목적으로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중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는 죄인의 우두머리로 살아오던 그릇된 인생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주님을 따른 예수님을 가장 닮은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이다.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발자국을 따라 인생의 경주를 마쳤으니 찬란한 의의 면류관은 나의 것이다.”라 자신 있게 외치며, 믿는 자 모두를 향해 “여러분들도 주의 뒤를 따르는 나를 쫓아 선한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나와 함께 생명의 면류관을 쓰자.”고 말하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을 본받아 우리만을 위해 살던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는 십자군의 정병들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나처럼 주가 가신 길을 걸으며 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해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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