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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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생애(2)-왕실 대학을 졸업하는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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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출 2:11-15)

 

애굽 왕궁에는 공주를 위해 호화롭게 꾸민 목욕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목욕을 하기 위하여 위험할 수도 있는 나일 강까지 나온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강이었기에 그들은 나일 강에서 몸을 씻으면 부와 자녀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나일 강가의 어느 지점에 왕족들만이 안전하게 목욕할 수 있는 특수 지역이 마련되었을 것이며, 바로의 딸이 그곳에 시녀들을 데리고 목욕하려 왔다 갈대숲에 걸려있는 대나무 바구니를 발견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시녀들이 건져온 대나무 바구니 속에서 준수한 히브리 사내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한 바로의 딸은 일찍 죽은 그녀의 딸을 생각하면서 그 아이를 자기가 길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모세를 바구니에 넣어 나일 강에 띄우고 그것을 쫓아오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다가와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 여인을 구할 수 있다고 하자 공주는 그 여자를 데려오라고 한다. 공주의 명을 받은 미리암은 모세를 낳은 어머니 요게벳을 데려왔다.

왕명에 의해 나일 강에 버려진 모세가 그 명령을 내린 바로의 딸에게 구원받아 그의 친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처럼 섬세하고, 자상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그의 뜻을 이루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모세는 대바구니에 실려 나일 강을 따라 흘러내려가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호화로운 애굽 왕궁이란 항구로 들어선 것이다. 거기서 모세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문명국이었던 애굽의 천문, 기상, 문학, 예술, 의학, 군사학, 건축 등의 학문을 공부하게 된다.

후일 그 왕궁의 주인인 애굽 왕과 대결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지도자가 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지혜를 얻은 것이다.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터득한 또 하나의 귀중한 것은 인쇄술이었다. 그 당시 애굽은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학문을 나일 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 껍질을 종이 대신으로 사용하여 기록하였는데, 모세는 이 기술을 배워 익힌 것이다.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터득한 여러 분야의 지식과 인쇄술은 그가 이스라엘 민족지도자로서 학대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빠져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그 모든 과정과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기록하여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으로 남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시 말해, 모세의 애굽 왕실에서의 40년 생활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이스라엘의 민족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기간 이었던 것이다.

이 기간이 끝나는 40세가 되었을 때 모세는 그의 앞에 놓인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는 생후 3개월부터 애굽 왕실에서 성장했기에 몸도 마음도 애굽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애굽 왕 투트모스 1세의 외동딸 핫셉슈트의 아들로 입적되었기에 왕위 계승권과 왕위 후계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권리를 승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의 혈관에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그를 품에 안고 키운 어머니 요게벳을 통하여 알고 있었다. 자기는 애굽 왕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의 동족들은 채찍을 맞아가며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모세는 동족들이 어떤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비돔 국고성 건설현장을 찾아간다.

그의 동족들은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들고, 큰 바위를 쪼개고 다듬어 성을 쌓는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한 감독관이 그의 동족 한 명을 심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매를 맞는 히브리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스데반은 그 히브리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했다.”(행 7:24)고 증언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심하게 매를 맞아야 할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동족이 억울하게 매를 맞는 것을 본 모세는 분개하여 그 애굽 사람을 때려죽이고, 그 시체를 모래 속에 파묻었다. 죽을 위기에 처한 동족을 구한 의로운 행위라 생각하고 한 일이지만 모세가 노예 감독관을 죽인 것은 중대한 과오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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