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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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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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세 가지 뿌리를 조심하라고 일러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가 말하는 세 뿌리는 “혀뿌리”, “손뿌리”, “xx뿌리”였다. 그때는 그 선생님의 말씀이 전도가 양양한 청년들에게 주는 인생의 충고라기 보다는 나이 드신 분의 잔소리처럼 생각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세 뿌리를 함부로 쓰지 말라던 그 분의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인생의 지침임을 깨닫게 되었다.

숱한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말이나 행동을 안 하거나 못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은 함부로 함으로서 그들이 쌓아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며, 그들을 믿고 따르던 이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는 서글픈 현상을 수시로 목도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선한 양심”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선한 양심은 지극히 평범한 의미를 지닌 말이라 볼 수 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기본적인 상식과 능력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면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다며 “내로남불”을 행하는 이들의 대열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 날 이런 서글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세 뿌리를 그들만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 남용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지는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믿었던 사람들이 혀를 제멋대로 놀리다 그네들의 인생을 파탄시킬 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단체나 사회나 국가를 혼란 시키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우리 조국이 여러 면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어려움에 처해 있다. 때문에 지혜롭고 진실하며, 참신하고 용기 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하는 국민들이 늘어가고, 그 결과 사십도 안 된 젊은 지도자가 제일 야당의 당수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야당의 지도자가 된 그가 가벼운 입 놀림을 되풀이함으로 복잡한 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며 안타깝고 당황한 마음 금하기 힘들다.

그는 “말로서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는 듯이 그가 생각하는 바를 여과 없이 뱉어내고 있다. 그는 자기의 경망스러운 언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며, 민의를 분열시키는지 모르는 것 같다.

“말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평범하면서도 귀중한 진리도 그에겐 생소한 것 같다. 그가 지금 야당의 대표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삼사일언”(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함)에 담긴 뜻을 깊이 음미하고 행하는 것이라 믿어진다.

한 마디 말을 하기에 앞서 세 번을 생각하라는 “삼사일언”의 교훈을 지키는 이들은 안정되고 평안하게 살며, 이웃과 사회에 많은 유익을 끼칠 수 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이 많아지며 약점도 드러나고, 본의 아닌 실수를 범하게 되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해를 끼치게 되지만, 말을 아끼면 좀 모자라도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져서 존경과 칭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언서에 기록된 “칼로 찌르는 것처럼 뼈아픈 말을 함부로 지껄여대는 사람도 있으나 지혜로운 자의 말은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준다.”는 가르침을 상기하면 이 사실은 자명해 진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고 싶다고 함부로 말을 내 뱉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히며 그들을 적으로 만들게 되지만, 유순한 말로 상대를 위로하며 격려하면 절망과 슬픔 속에 있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그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람되고 복된 인생길을 걸을 수도 있고, 비참한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이것을 잠언 기자는 “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혀를 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는다.”고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한 말로 인해 덫에 걸려드는 불행한 존재가 되지 말고, 경우에 합당한 옳은 말만을 하되 세 번 이상을 생각한 후에 함으로서 낭패와 실망의 늪에 빠져들지 말고 희망의 대로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는 동포들 사이에도 말을 함부로 함으로 상호간에 적대감이 조성되고, 하나로 뭉쳐 아름답게 발전해야 할 동포사회에 풍파가 일어나고, 분열되는 현상까지도 일어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목표도 다르며, 그것을 성취하려는 방법도 같지 않다. 따라서 각기 다른 계획과 방안을 진지한 대화를 통해 바람직하게 배합하여 추진해 나가야만 동포사회는 캐나다에서 모범적인 소수민족 집단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반되는 의견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일심동체가 되어 밀고 나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기에 상대의 주장은 그릇된 것이라 단정하는 자만과 교만과 거만부터 버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화합이 이루어지지 못함은 물론 “나의 좋은 생각”까지도 상대에 의해 배척당하며 “동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크나큰 잘못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논쟁하는 것을 들으면 언제나 극과 극을 달린다. 검사의 논고를 듣노라면 피고가 유죄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변호사의 변론이 시작되면 피고인은 억울한 피해자로 변하게 된다.

어느 변호사가 “진실 혹은 사실은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변호사의 말은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기에 상대가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상대의 입장은 정반대이며, 실제로 “정말 옳은 것”은 나와 상대의 사이 어딘가에 있을 확률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상대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여겨지지만 그의 입장에 서서 듣노라면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내 주장만이 선하고 정의로우며 옳다는 자세를 버리고 상대의 의견에 함축된 타당성과 정당성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그래야만 통합과 화합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쟁 없는 동포사회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필요한 논쟁과 분열의 근본 원인이 되는 말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싶다. 우선 “어리석은 사람은 쌓인 분노를 다 터뜨려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 분노를 억제하느니라.”는 말씀을 가슴에 간직해야 할 줄 안다. 그래야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거나,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은 사람들이나 그들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분노하여,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함부로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과 더불어 “누구든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함부로 성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병행하여 실행한다면 입과 혀의 해독으로부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며, 인생의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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