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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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생애(2)-애굽으로 팔려가는 요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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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하여 요셉의 옷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요셉은 자기의 옷을 그녀의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런 상황을 가장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모욕까지 당한 여인은 손에 든 요셉의 옷을 증거 삼아 히브리 노예가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고 하인들과 돌아온 남편에게 고해바친다.

분노한 보디발은 요셉을 옥에 가둔다. 그 당시 애굽에서는 성폭행 죄에 사형을 적용했다고 한다. 특히 요셉의 경우엔 노예가 주인의 아내를 범하려 한 것이기에 즉석에서 처형당해 마땅한 죄였다. 그런데 보디발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집어넣었다.

요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보디발은 아내가 하는 말보다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는 요셉을 더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고 아내를 정죄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는 요셉을 투옥시키는 “가벼운 형벌”로서 사건을 종결 지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아무리 가벼운 형벌이었지만 요셉에 대한 인간 법정의 판결은 유죄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법정에서의 결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 마디로 하나님은 “나는 결코 주인의 아내와 통간하는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라 외치며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요셉에게 무죄를 선고함은 물론 그를 영광의 승리자로 만들어 주셨다.

요셉은 사탄이 비장의 무기로 사용한 “육신의 정욕” 앞에 무너지지 않고 승리한 의미는 크기만 하다. 우선 요셉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김으로 깊은 인생의 수렁에서 벗어나 찬란한 면류관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보디발의 아내가 관능적인 몸매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야곱을 유혹한 것은 그녀가 사탄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지시를 받은 뱀이 그 징그럽고 추한 모습을 아름답게 위장하고 하와에게 접근하여 금단의 열매를 따먹도록 유혹한 것처럼 말이다.  

요셉이 그 같은 사탄의 간교한 술수에 넘어가지 않고 우뚝 섬으로 후일 예수께서 광야의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후 당하신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실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때 사탄은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의 길로 가게 한 “금력과 권력과 쾌락”의 카드를 손에 들고 예수님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라 호통 치심으로 사탄을 쫓아버리시고, 인류구원을 위한 공생애의 발걸음을 내딛으셨다.

요셉이 “내가 어째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겠습니까?”라며 그에게 매달리는 보디발 아내를 밀어낸 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발길을 저지 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을 어떻게 분쇄하실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요구를 거부한 대가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투에 지고, 전쟁에 이긴 참되고 진정한 승리였다. 그리고 그 승리로 인해 요셉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능가하는 의로운 사람, 믿음의 용장이 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아내 사라를 애굽 왕과 그랄 왕에게 들여보냈고(창 12:10-22; 20:1-7), 이삭도 그의 안전을 위해 아내 리브가를 블레셋 왕에게 보내는 부끄럽고 부도덕한 죄를 범했다. (창 26:1-11)

야곱은 어떠했던가? 그는 에서에게 속한 장자권을 가로채기 위하여 형과 아버지를 기만하고 속이는 거짓의 죄를 지었다(창 25: 27-34; 27:1-45). 하나 같이 하나님 앞에 수치스럽고,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슬프게 한 죄악이었다.

그들과는 달리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유혹을 받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적유혹을 물리치지 못하여 전도유망한 장래를 망치고, 평생 노력하여 성취한 모든 것들을 일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그만큼 성적 욕망은 뿌리치기 힘든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요셉의 경우에는 그가 주인의 아내가 뻗치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보다 힘든 일이었다. 억울하게 이역 땅으로 팔려가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 그에게 들려온 여인의 달콤한 음성과 부드러운 손길을 외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인간의 자제력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요셉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로운 사람과 믿음의 용장이 되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요셉만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창 41:38)이라 기록된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의로운 요셉이 강간미수의 죄명을 쓰고 옥에 갇힌 것은 이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실망하며 슬퍼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그 같은 인간 세계의 모순과 불법을 이용하여 그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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