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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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생애(1)-꿈꾸는 소년 요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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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요셉의 형들은 동생의 꿈속에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숨겨져 있음은 생각조차 못하고, 그런 꿈 이야기를 하는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 자신도 그의 꿈에 담겨진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믿었다. 그러기에 그는 그 꿈으로 인해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지만 그에게 그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도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기대와 바람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요셉이 헤어나기 힘든 깊은 수렁에서 걸어 나와 빛나는 인생의 승리자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준 그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야 한다. 꿈을 지니면 어떤 난관과 시련에 부딪쳐도 일어설 수 있으며, 아무리 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나도 극복하며 달려나갈 수 있는 법이다.

꿈을 가진 사람은 역경을 당해도 주저앉지 않으며, 꿈을 간직한 이들은 세월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당당하게 전진하다가도 가슴속에 간직한 꿈이 퇴색하거나 없어지면 참으로 허무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김동인의 “무지개를 잡으려는 소년”이 그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쫓아 달리면서 그 소년은 온갖 어려움을 다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무지개는 그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여겨 무지개를 잡을 꿈을 포기하는 순간 그 소년은 백발의 머리와 숱한 주름살이 잡혀있는 얼굴을 지닌 추하고 볼품없는 노인으로 변해버린다.

꿈꾸는 사람은 소망가운데 보람되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지만 꿈을 상실한 이들은 무겁고 힘든 인생의 짐을 지고 허덕이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꾸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꾸는 꿈은 하나님의 역사 운영에 기여할 수 있는 꿈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꿈이 성취될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의 자격으로 천성문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17세 소년 요셉에게 잉태된 꿈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사명이었고, 그는 오랜 시간 인내하며 그 꿈을 실현시킴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드렸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꾸어선 안 될 헛된 꿈을 이루기 위하여 질주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은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만족시키며 해가 뜨면 걷혀버릴 “아침 안개”같이 짧은 인생을 즐기기 위한 목표를 이루려고 전력투구하는 이들이 그런 불의한 꿈을 꾸는 어리석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무리들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그들을 괴롭히고 해치며, 그들이 속한 단체와 사회를 파탄시킴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망치는 민족의 죄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생하여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얻으려고 손 비비는 기회주의자들도 역사의 주인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요셉이 가슴에 품었던 꿈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의로운 꿈이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드리는 것이 그의 꿈이었던 까닭이다. 요셉은 그 중대하고 귀중한 꿈을 이루기 위하여 견디기 힘든 수치와 모욕,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핍박을 당해야 했는데 그 시작은 형들에 의해 이역 땅 애굽으로 팔려간 것이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기 시작한 근본 원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그를 향한 편애 때문에 희생당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장자로 태어나기를 원했고, 자라나면서도 항상 형의 장자권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에 몰두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너는 이 음식으로 아버지 이삭을 즐겁게 해드리고 그의 축복을 받으라고 어머니가 강권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를 속여 가면서까지 장자의 권리를 획득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가 형 에서로 행세하는 것이 알려지면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을 지도 모른다며 주저했던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어머니의 강경한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야곱은 크나 큰 고난과 슬픔과 어려움을 당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 자신이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 요셉을 그의 장자와 상속자로 취급하는 정도로까지 편애한 것은 크나 큰 잘못이었다. 그로 인해 요셉이 형들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의 증오와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요셉이 꾼 두 번에 걸친 꿈 이야기를 함으로 인해 그의 형들은 요셉을 “미움의 대상”에서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낙인 찍어 버렸다. 그들이 그 무서운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그들이 양 떼를 몰고 집을 떠나 세겜으로 갔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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