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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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생애(7)-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하는 야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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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라헬이 죽으면서 낳아준 아들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고침으로 그녀를 잃은 슬픔과 아픔에서 벗어나 그 아들을 통해 라헬이 그에게 심어준 새로운 삶의 의미를 살리며 살겠다는 결의를 다짐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었을 때 슬피 울었지만(창 23:2), 야곱이 라헬의 죽음 앞에서 울었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야곱은 라헬의 무덤에 묘비를 세웠다. 그녀의 무덤에 엎디어 슬피 우는 대신 성경에 나오는 여인을 위한 최초의 묘비를 세움으로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은 영원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기쁨과 소망의 아들 베냐민을 얻은 야곱에게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일이 생긴다. 장남 르우벤이 야곱의 아내 중의 하나인 빌하와 동침한 것이다. 그의 딸 디나가 이방인 세겜에게 겁탈당한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고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아들이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디나가 능욕을 당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내가 아들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알고도 야곱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도 디나가 치욕을 당했을 때는 흥분하여 세겜 성내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지만 르우벤과 빌하의 일에 관해서는 잠잠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그대로 묻히지는 않는다. 후일 임종 시에 야곱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다.”며 르우벤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49:4). 세겜 성 학살을 주도하였던 시므온과 레위도 야곱의 축복에서 제외되었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장자의 축복은 넷째 아들인 유다에게 돌아갔다(창 49:8).

르우벤 사건 이후 야곱은 또 한 번의 장례를 치르게 된다. 아버지 이삭이 180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삭의 임종은 에서와 야곱이 함께 지켜보았다. 이 사실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 라반을 찾아 갈 때 루스 광야로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그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 하신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창 28:21).

아브라함은 175세에, 야곱은 147세에 생을 마감했기에 이삭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 중 가장 장수했을 뿐 아니라 장자권 다툼으로 원수 되었던 에서와 야곱이 아름답게 화해한 모습을 보며 눈을 감는 복된 인생을 산 것이다.

아버지 이삭의 장례를 끝낸 후 에서는 야곱과 헤어져 세일 쪽으로 가고, 야곱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그대로 남는다. 그들의 이 같은 선택은 그 옛날 애굽에서 나온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서던 때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때 아브라함과 롯은 그들의 가축 떼가 너무 많아 헤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주자 롯은 넓고 물이 넉넉한 요단 동편을 향해 갔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남았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도 둘 다 소유가 너무 많아 함께 있을 수는 없는 형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에서가 택한 곳은 그의 자손들이 번성할 수 있고, 소유가 더 풍족해 질 수 있는 세일 지역이었지만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에게 주시겠다고 한 가나안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세일로 간 에서는 에돔 왕국을 이루고 많은 후손을 두며 크게 번영하는 축복을 누린다. 이에 반해 야곱은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애굽으로 들어가 400년간 종살이를 하는 슬픔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에서에게 주어진 축복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기여한 은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인이나 선인 모두에게 주시는 은혜로서 세속적이며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야곱의 후손들은 애굽의 극심한 압제를 받으며 오랜 세월 신음해야 했지만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가나안 복지를 정복할 수 있었다.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어 일시적 번영을 누린 에서가 물질주의의 표상이었다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야곱은 현재의 고난을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이겨내는 믿음의 후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로서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리브가가 걱정할 정도로 격렬하게 싸우는 사이였으며, 야곱은 자기가 먼저 나가겠다고 형의 발꿈치를 잡기까지 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답지 않게 모든 면에서 판이하게 달랐다. 에서는 마치 털옷을 입은 것처럼 전신이 붉은 털로 덮여있었고, 야곱의 피부는 매끄럽기만 했다. 자라면서 성격도 전혀 달라서 에서는 씩씩한 사냥꾼이 되어 산과 들로 쏘다녔고, 야곱은 집에서 어머니의 치마폭을 붙잡고 맴돌았다.

그러다 보니 에서와 야곱은 같은 길을 걷지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다. 에서는 넓고, 평안하고, 안전해 보이는 세상길을 따라 걸었고, 야곱은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영원한 영광의 길을 따라 걸었던 것이다. 그 결과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아버지가 되었고, 에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끊임없이 대적하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에서와 야곱은 각기 그들이 선택한 인생을 살았고, 그들이 산 삶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언제나 선택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그러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도 다르고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들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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