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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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생애-도망 길에 오르는 야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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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든 야곱은 꿈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본다. 그가 누운 곳에서부터 하늘까지 계단이 놓이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곁에 서 계셨다. 졸지에 쫓기는 자가 되어버린 야곱은 자기는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외롭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그를 지켜 주셨음은 물론 캄캄한 밤 빈들에 홀로 누운 그에게 몸소 찾아오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어째서 거짓 수법을 동원하여 형에게 주어진 장자의 권리를 가로챘느냐고 꾸짖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말씀은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였다.

아담과 하와에게 어찌하여 먹지 말라한 열매를 따 먹었느냐고 책망하셨고(창 3:6-11),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고 가인의 죄를 추궁하셨으며,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하고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던(창 6:5-7) 하나님이시다.

야곱이 속임수를 써서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강탈한 것은 크나 큰 죄악이었다. “거짓”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품성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까닭이다. 하나님은 야곱이 비겁하고 교활하며, 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자인 것도 잘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을 이삭의 후계자로 선택하신 까닭은 야곱이 가슴 속 깊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 같은 마음은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 받을 수 있는 장자권을 사모하게 만들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짓”까지도 동원하게 했던 것이다.

야곱이 장자권을 갈망했음은 그가 땅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당장 눈에 보이고 소유할 수 있는 것보다는 저 멀리 있는 영원한 기쁨과 찬란한 영광을 원했음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이 허물투성이의 인간이요, 아버지와 형을 기만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키시며 몸소 찾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신 것은 야곱을 이삭의 후계자로 인정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삭에게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펴져나갈 지며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과 같은 언약(창 12:1-3)을 야곱에게도 해 주신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하실 때 아브라함에게는 아내 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까지 임신을 하지 못했기에 나이 많은 그녀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에게 같은 약속을 하셨을 때 야곱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겠다.” 하신 것은 야곱이 좋은 배필을 만나 많은 자손을 갖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실제로 야곱은 4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들이 낳은 열두 아들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언약을 야곱에게도 하시면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무사히 고향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와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형 에서를 피해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을 찾아가는 야곱에게는 한없는 기쁨과 용기를 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었다. 동시에 그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용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인류구원 계획까지 내포되어 있었다.

야곱이 떠났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뜻은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400년 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한 후 그 곳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되돌아오게 할 원대한 계획이 말씀해 주신 것이었다.

하란으로 향하던 야곱이 루스 근방의 황막한 들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밤을 지낼 때 그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신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는 후일 삼손이 하나님은 그를 떠나셨는데도 여전이 그의 곁에 계신 줄 알고 그를 잡으러 몰려온 블레셋 사람들을 때려눕히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었다.

하나님은 함께 계신데 그것을 모르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1, 4)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곁에서 동행하고 계신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외로움과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은 어둡고, 어두움의 세력은 강하고 악랄하여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함께 걷고 있음을 확신하며 선한 싸움에 임하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승리를 확신하며 나아갈 수 있다. 전능자 예수 그리스도를 격파하지 못하면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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