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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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맞이하며
daekim

 

눈 내리는 밤 북극 하늘에서 썰매를 타로 오시는 산타 크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았던 때가 있었다. 부산 초량피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 해 성탄전야에 우리들은 산비탈에 엉성하게 세워진 판자 교실에서 우리가 직접 쓰고, 의상을 만들어서 산타 크로스 할아버지가 춥고 배고픈 전쟁고아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성탄연극을 공연했다.

그날 저녁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판자 위에 가마니를 펴서 둘러 싼 교실에서 우리들의 연극을 지켜본 부모님들과 우리 학교를 도와주던 미국 선교사들은 정말 잘했다고 우리들을 칭찬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은 초콜릿과 과자가 든 푸짐한 성탄 선물을 우리들에게 안겨주었다. 전쟁 중에 피난지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였고,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도 못했던 때였지만 잊지 못할 성탄절 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중 고등학교 시절의 성탄절은 언제나 교회에서 맞았다. 12월 24일 저녁에 성탄 예배를 드리고는 교회에 남아 저녁을 먹고, 학생들끼리 선물교환을 했다. 남녀학생들이 서로 제비를 뽑아 선물 줄 상대를 정했는데, 남학생들은 거의 모두 자기가 원하는 여학생 이름을 뽑기 원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여학생 이름을 뽑지 못했다. 어쨌든 우리는 선물교환 시간을 무척 기다렸고, 또 즐겼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선물교환이 끝나면 초롱불을 밝혀들고 교인들의 집을 찾아 다니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의 성탄 찬미를 불렀고, 집마다 엿, 약과, 과자, 과일 같은 것들을 준비했다 주곤 했다. 제일 앞에 서서 그것들을 받는 일을 전담했던 친구가 오래 전에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와 그때 일들을 회상하며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2학년까지는 중 고등하교 시절과 같이 교회에서 성탄절을 보냈지만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친형제보다 가까웠던 7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젊은이들의 성탄절을 즐겼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 마음에 싹트기 시작한 교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불만과 반항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접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군 간부후보생 모집서류에 기독교인이라 자연스럽게 기재했고, 입대하면서 성경과 찬송을 소중하게 짐 속에 집어넣었다. 훈련이 시작된 지 한 달 후 후보생들의 예배참석이 허용된 첫 주일에 기지교회에 들어선 나는 “이 몸의 소망 무언가”를 부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내야 했다.

그때 대전 공군기술 교육단 군종실장이셨던 김선도 목사님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인생의 모든 문제들과 지금 받는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설교를 들으며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그 날 이후 난 다시 성실한 모태 신앙인으로 돌아왔고, 그 후부터는 성탄절이 되면 성탄 예배를 드린 후 홀로 조용히 지낼 때가 많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날인 성탄절을 통행금지까지 해제되는 특별한 휴일로 착각하여 먹고, 마시고, 취하여 고요하고 거룩해야 할 성탄전야에 서울을 광란의 도시로 만드는 풍조는 계속되고 있었다.

캐나다에 와서 보니, 성탄절의 분위기는 서울에서처럼 무질서하고 문란하지는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신 거룩한 성탄절이 세속화 되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부모 형제와 아주 가까운 친지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 외에는 우리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성탄절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이민목회를 시작하고부터는 성탄절이 되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교우들에게 알려주는데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해야 성탄절을 뜻있게 맞이할 수 있는가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글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강단에서나 신문을 통해서나 내가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은 성탄절은 사람들이 제정한 공휴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 죽어가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보내주신 날이라는 것이었다. 성탄절은 예수님에게는 한없이 슬픈 날이요,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기쁜 날이기도 하다는 점도 되풀이했다.

이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죄로 물든 세상에 오셔야 했으며, 인간들에겐 죽음의 길을 벗어나 생명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날이 성탄절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원한 파멸의 길에서 영생을 누리는 축복을 받으려면 구원이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을 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 깊이 맞아드려야 한다. 하지만 아기 예수는 베들레헴 어느 마구간에서 태어나는 슬픔과 외로움을 맛보셔야 했다. 그때 유대 땅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을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방 한간조차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12월이 가까워지면 사람마다 성탄 분위기에 휩싸이고, 교회들은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조명 밑에서 엄숙하게 성탄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릴지라도 예배하는 이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좌정해 계시지 않는다면 구세주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에게 영광 돌리는 성탄 예배가 될 수는 없다. 오늘날 교회마다 성탄 특별예배를 드리며 “구세주 탄생했으니 다 찬송하여라.”며 소리 높여 찬송하지만 그것이 입술의 찬양에 그친다면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에게는 그를 경배하는 찬송으로 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구세주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Merry Christmas!"라 말 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마음을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단장하고 아기 예수를 마음속 깊이 모셔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목회를 하는 동안 성탄절이 될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탄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성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길이라 믿고 그것을 실천했다.

일선 목회에서 은퇴한 후부터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우리 부부는 아들과 두 딸과 손자 손녀들을 불러 모아 성탄의 유래와 의미를 들려주며 성탄을 축하하곤 했다. 그런데 금년에는 성탄절이 일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사실이 느껴지지도 않을뿐더러 표현하기 힘든 서글픈 감정까지 밀려들면서 문득 막내딸이 어렸을 때 성탄절을 앞두고 우울해 하던 일이 생각난다.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개척교회를 시작한 때였다. 성탄 예배를 준비하노라 바쁘게 지내던 12월 중순 어느 날, 12살 된 막내딸 사라가 16층 아파트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물었다. “사라, 무엇을 생각하고 있니?” “아빠, 금년에는 아주 슬픈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니?” 뜻밖의 말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빠, 엄마는 내게 아무런 선물도 줄 수 없잖아.” 나를 쳐다 보는 사라의 두 눈이 젖어있었다.

그 애가 며칠째 우울해하던 까닭을 알게 되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꼈다. 목회를 하기 전에는 매년 12월이 되면 거실에 성탄나무를 세워 놓고 그 밑에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수복하게 쌓아놓곤 했었다. 성탄전야에 선물상자들 하나씩 뜯으며 즐거워하는 사라를 위해서는 큰 딸 진아나 아들 벤보다 더 많은 선물들을 준비했었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미리 알고 싶어 자기 이름이 적혀있는 상자를 들어보기도 하고, 흔들어보기도 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사라였다.

 그러다 아버지가 개척교회를 목회하노라 바쁘고 정신없어 전처럼 거실에 성탄나무를 장식해 놓고 언니, 오빠, 자기를 위한 선물을 마련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아이의 마음이 슬퍼진 것이다. 그날 난 사라가 반짝이는 성탄나무 아래 쌓이는 선물상자의 숫자에 따라 기쁘고 즐거운 혹은 쓸쓸하고 슬픈 성탄절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날이 속히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코로나 펜데믹 때문에 금년 성탄절에는 직계 가족들과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참으로 허전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어느 때보다 기쁘고 즐겁고 의미 있는 성탄절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매년 이제는 그만 버리자고 하면서도 20년 가까이 사용해온 자그마한 탁상용 성탄나무를 또 꺼내 장식해 놓았다.

그 작은 성탄나무 앞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이 전하는 구주 나신 소식을 듣고 달려와 아기 예수께 경배하던 마음으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 노래한 천사들의 찬송을 마음속에서 소리 높여 찬송하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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