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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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생애(5)-언약의 자식 이삭을 갖게 되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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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음으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서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사라가 자기에게서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이 태어날 때에 세라. 사라가 이르되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르되사라가 자식들을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창 21:1-7)

 

롯은 그의 아버지 하란이 일찍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삼촌 슬하에서 자라났기에 아브라함은 그에게 친아버지와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고향을 떠날 때 롯도 함께 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애굽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롯은 아브라함을 떠난다.

 

두 사람의 가축 떼가 불어남에 따라 같이 있기가 힘들게 되자 아브라함이 롯에게 좋은 지역을 먼저 선택하라고 하자 롯은 넓고 물이 넉넉한 요단강 유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가 향한 곳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쪽이었다. 가는 도중 몇 곳에 머물기는 했지만 결국 롯이 정착한 곳은 죄악으로 가득 찬 소돔이었다.

 

이기심과 탐욕에 사로잡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죄와 향락의 도시 소돔에 살던 롯은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그 지역을 침범할 때 그들의 포로가 된다. 아브라함의 결사대에 의해 구출된 후에도 롯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아 소돔으로 다시 들어가 재산을 축적하며, 치안 재판관이 된다.

 

하지만 그가 풍요롭게 세상의 낙을 누리며 산 기간은 극히 짧았다. 하나님이 죄악이 관영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때문이다. 그때 롯은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에 힘입어 소돔 성을 빠져 나오지만 그의 두 예비 사위는 그대로 남았고(창 19:14), 그의 아내는 성을 나온 후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창 19:26; 눅 17:32). 소돔에서 살아나온 롯은 사해 동방 산지의 동굴에서 두 딸과 살다 그들과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게 된다.

 

그 결과 큰 딸이 낳은 아들의 자손들은 모압족속이 되고, 둘째 딸의 아들은 암몬자손의 조상이 된다. 훗날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할 때 이방 술사 발락을 시켜 그들을 저주하려다 실패하자 그들로 하여금 음행의 죄를 범하게 했다(민 25: 1-18).

 

암몬족은 지극히 잔인한 족속이었으며, 우상을 숭배했고, 그들이 숭배하는 몰렉 신에게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레 18:21). 롯의 잘못된 선택은 그를 비참한 인생의 패배자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근친상간으로 두 딸이 낳은 두 아들들은 이스라엘에게 많은 해를 끼치며 그들을 괴롭힌 이방민족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모압자손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룻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구원의 문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드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음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광야의 순례자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을 떠나 가나안과 애굽 국경 사이에 위치한 그랄로 옮겨간다. 그 곳은 대상들이 많이 통과하는 지역으로서 아비멜렉이 통치하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거기 오래 머물 계획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많은 가솔들과 가축 떼를 거느린 족장이었고,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전투경력까지 지닌 아브라함이 그 곳에 온 사실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사라로 인해 그의 신변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 아브라함은 또다시 그녀를 누이동생으로 행세하게 하여 그랄 왕에게 들여보낸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의혹을 가지게 된다.

 

구십이 넘은 사라가 그때까지도 여인으로서의 매력이 있었느냐가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떻게 아브라함이 20여 년 전과 같은 부끄러운 행위를 되풀이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비록 구십이 넘었지만 사라는 여전히 뭇 남자들이 탐내는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에 아비멜렉이 그녀를 취한 것은 여자 사라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의 영토에 들어온 부유하고 힘 있는 족장의 동생과 정략결혼을 하여 우호관계를 맺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누가 옳든 간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안정을 위해 또다시 사라를 동생이라 속인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일 년 후에 사라가 득남할 것이라 약속하신 후이기 때문에 그녀가 그랄 왕의 아이라도 갖게 되면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에 차질이 생기 수도 있는 용서받기 힘든 죄악을 아브라함이 범하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범한 이 같이 엄청난 죄가 그의 역사운영에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하신다.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기 전에 사라의 신분을 그에게 알려주시기 때문이다. 꿈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라가 누구인가를 알게 된 아비멜렉은 다음 날 아침 신하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주고, 아브라함에게 어째서 그런 기만행위를 했느냐고 묻는다.

 

아브라함은 전에 애굽 왕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침묵하지 않고 그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음으로 그녀를 탐내서 그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사라는 이복동생이라고 그의 비열한 행위를 변명한다.

 

그가 저지른 비도덕적이며 수치스런 과실을 정당화하려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나무라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그랄 왕을 책망하시고,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게 하신다.

 

우리는 반복되는 아브라함의 과오를 보며 실망할 것이 아니라 인내와 사랑으로 아브라함의 연약한 믿음을 감싸며 그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과 자비와 관용을 우리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자비가 영원하시고 크고, 깊고, 넓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그가 말씀하신 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게 하신다. 하란을 떠나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25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아들이 생기는 것을 포기하고 그의 충복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으려고도 마음먹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가 낳는 자식이 네 후계자가 될 것이다.”라 말씀하시며 “언약식”까지 행하셨다. 그런데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언약의 실현이 지연되자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언약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나님께서 일 년 후에는 사라가 아들이 낳을 것이라 말씀하실 때에도 사라는 그것을 믿지 못하여 웃어버리기까지 했다. 아브라함도 그 말씀을 들은 후에 그랄 왕에게 사라를 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이 모든 시련의 과정을 거친 후 마침내 이삭이 태어난 것이다. 아브라함이 백 세, 사라가 구십 세 되던 해였다. 두 늙은 부부의 기쁨은 크기만 했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초조함이 감돌던 집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구십구 세였던 그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웃었다(창 17:17).

 

일 년 후에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란 말을 듣고 사라도 웃었다(창 18:12). 그러나 사라의 몸에서 나온 이삭을 안고 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은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하여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러기에 사라는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으니 이 일을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창 21:6)라 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과 행복의 웃음은 번민과 고통의 눈물로 변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태어난지 팔 일만에 이삭에게 할례를 행한다. 그리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 당시의 관습에 따라 큰 잔치를 베푼다. 그 즐거운 날에 사라는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때는 보통 세 살까지 젓을 먹였으니 이삭은 세 살이고, 이스마엘은 열일곱이 되던 해였을 것이다.

 

다 큰 소년 이스마엘이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이삭을 괴롭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십삼 년 이상을 아브라함의 사랑을 독차지지 해온 이스마엘이 이삭이 태어난 후부터 아브라함이 이삭만을 애지중지 하는데 대한 불만과 질투의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25년 이란 긴 세월을 기다리다 얻은 이삭을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조롱하는 것을 본 사라는 분노하여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이스마엘은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을 수 없습니다.”라 강하게 말한다.

 

아브라함는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약속의 자식은 아니지만 그의 핏줄인 이스마엘을 내친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라. 이삭에게서 낳는 자라야 네 후손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에게도 많은 후손을 주어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창 21:12-13)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 빵과 물 한 부대를 주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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