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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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생애(4)-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 받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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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구십구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언약을 나와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영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보라,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언약을 너와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후손에게 내가 거류하는 가나안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1-8)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하나님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며,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창 12:1-2)로 약속하셨다. 10년 후에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고 다시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도 자식이 없자 사라는 여종 하갈을 남편과 동침하게 하여 이스마엘을 태어나게 한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크나 큰 실수였다. 사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지게 하려 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언약식까지 행해 주셨는데도(창 15:12-21) 사라의 생각에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언약의 후손이 아니었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아브라함이 구십구 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라 말씀하신다. 이미 두 번이나 말씀하신 자손의 축복을 다시 반복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어째서 사반세기 동안이나 언약을 지키지 않으시다 백세를 눈앞에 둔 그에게 또 다시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 거기 대한 해답은 그의 언약을 되풀이하시기 전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신 데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구십구 세였고, 사라는 팔십구 세였다. 둘 다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나이가 된 때였던 것이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지 않으시면 그들 사이에서 자식을 기대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그가 그들 사이에 자식이 생기도록 해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계속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신 것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명하신 것이다. 그때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었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원하신 것은 그가 에녹이나 노아처럼 그와 동행할 수 있는 흠 없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창 5:24; 6:9)

 

그렇다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된 우리들도 육상선수가 결승선만을 바라보며 달리듯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설정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엎드림으로 말씀에 순종할 것을 아뢰자 하나님께서는 “지금부터 너는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될 것이다.”라 들려주신다. 그때까지 “아브람”(존경 받는 아버지)이던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많은 나라의 아버지)로 바꿔주신 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의미한다.

 

“시몬”이 “베드로”가 되었고, “사울”이 “바울”로 되어 복음증거의 선두주자들이 되었듯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도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벧전 2:9)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삼겠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대대 후손들에게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신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 언약을 받아드리는 서약의 표시로 할례를 하라 명하신다.

 

할례는 남자 생식기의 표피를 베어내는 것으로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맺은 계약이 영원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그의 집에 거하는 모든 남자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할례를 받지 않으면 그의 백성 가운데서 제거당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할례를 받을 수 없는 여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다(창 2:24). 따라서 여자들은 아버지나 남편과 더불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세례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옛 것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표시하는 의식이다. 그런 까닭에 구약시대의 할례가 신약시대의 세례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가솔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은 그의 아내 “사래”를 “사라“라 부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을 “존귀한 아버지“에서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만드신 하나님이 사라를 “존귀한 여인“에서 “많은 민족의 어머니“로 만들겠다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엎드려 이 말씀을 받았지만 “이스마엘이나 축복 가운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 아뢴다. 사라가 많은 민족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아내 사라가 낳을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내가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어 번성하게 하며, 그에게서 열두 통치자가 나오게 하겠다. 그러나 나의 언약은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낳을 이삭과 세우겠다.”라 말씀하신다.

 

일 년 후에 태어날 이삭을 통해 그의 언약이 실현될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말씀을 마치신 하나님이 떠나시자 아스마엘과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할례를 받았다.

 

이 일이 있은 후 하나님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숲에 있는 아브라함을 찾으신다. 천막 입구에서 쉬고 있던 아브라함은 맞은편에 세 나그네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뛰어가 잠깐 쉬어 가라고 청한다. 유목민들이 지나는 객들을 대접하는 것은 그 당시의 풍습과 같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세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푼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귀한 손님으로 맞아 성심을 다해 대접했다. 사랑과 정성으로 차린 음식을 먹던 그들은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순간 아브라함은 그들이 하나님의 천사들임을 알아챘다. 생면부지의 나그네들이 아내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이 사라는 천막 안에 있다고 대답하자 그들 중 하나가 “내가 내년 이때쯤 다시 올 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다.”라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신 것을 확신했다. 천막 속에서 그 말을 들은 사라는 속으로 웃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째서 사라가 웃느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듣고 두려워진 사라는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 거짓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 너는 웃었다.”라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라를 향한 준엄한 책망이었다.

 

떠나는 세 나그네를 전송하기 위해 따라 나선 아브라함은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자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십니까?”라 묻는다. 솔직하면서도 당돌하다고 여겨지는 질문이었다. 티끌과 같은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결정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물음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같이 물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때 소돔 성에 살고 있었던 롯과 그의 가족들과 그가 롯을 구출할 때 함께 구해낸 소돔 백성들은 그에게 돌려주고 전리품을 가지라고 하던 소돔 왕을 구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까닭은 죄악의 도시 소돔에도 의인이 있을 터인데 그들이 악인들과 같이 멸망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며,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에 아브라함의 질문은 해서는 안 될 무모한 “이의 제기“로 간주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묻는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의인 오십 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말아달라는 아브라함의 간청을 받아드리신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의인의 수가 오십이 아닌 열만 되어도 두 성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이 내리신 유황불 속에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은 그의 결정에 대한 타당성을 인간들에게 설명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도록 역사를 운영하실 뿐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택하신 아브라함의 간청을 받아드려 의인 열 명이 있으면 죄악의 두 도시를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불행히도 열 명의 의인이 없었기에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 한 분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심으로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이 자녀들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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