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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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생애(1)-부름 받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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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12:1-3)

 

태초에 지구는 아무 형태도 없이 텅 비어 흑암에 쌓인 채 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어둡던 세상이 밝아졌다. 하나님은 밝아진 세상을 하늘과 땅과 바다로 나누시고, 해와 달과 새와 물고기와 짐승 등의 생물과 수목들을 창조하셨다. 마지막으로 그의 형상대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아름답고 완전한 세상을 아담과 하와에게 맡기시며,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살아가라고 축복해 주신 것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이 같은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운 축복을 오래 누리지 못한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열매를 먹으면 “너는 죽을 것이다.”라 하셨지만 하와는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그 열매를 따 먹었고, 아담에게도 먹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낙원에서 축출 당한다.

 

에덴동산의 완전한 질서와 조화는 찾아볼 수도 없는 무질서와 혼란스런 세상에서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난무하는 죄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없는 슬픔과 고통을 맛보며 살아야 했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 죄악의 물결이 높아만 가며,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며 그가 창조하신 사람으로부터 지상의 모든 생물들과 공중의 새들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시고(창 6:7), 당대의 의인이며 그와 동행한 노아에게 큰 배를 지으라고 명하신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이가 150미터, 너비가 25미터, 높이가 15미터나 되는 배를 건조한다. 노아가 그 배를 건조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20년 이었다. 배가 완성되자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과 세상 모든 생물들을 암수 한 쌍씩 데리고 배에 오른다. 이때 새와 짐승과 땅 위의 모든 생물들이 짝을 지어 노아가 만든 배인 방주로 모여들게 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의한 것이었다.(창 6:20)

 

방주의 문이 닫힌 7일 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40주야간 계속되었고, 온 땅이 물에 잠겨 지면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은 멸종되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되었고, 이듬 해 2월 27일에 땅이 완전히 마르자 노아는 그의 가족들과 배 안의 모든 생물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노아가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제물을 골라 번제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며 심중에 “사람의 생각이 악하긴 하지만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이번처럼 생물을 전멸시키지는 않을 것이다.”(창 8:21)라 작정하신다.

 

그리고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 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에 기는 생물과 바다의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다.”(창 9:1)라 말씀하셨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하신 것과 같은 축복이었다.

 

홍수 이후 인류는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에 의해 여러 나라와 민족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노아의 후손들로 번성해 가는 새로운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거역하며 그들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인간들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 방법이 다양했음은 물론 수법도 달라져서 개인적인 것에서 집단적인 것으로 변모해 가더니 바벨탑을 건설하여 하나님과 대결하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가 그들이 바벨탑을 쌓으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못 알아듣게 만들어 탑을 쌓던 무리들을 온 세상에 흩어버리신다. 그를 향한 인간들의 집단적인 반항을 무력화시키며, 그가 원하시는 대로 사람들이 온 땅에 충만할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악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에게 도전하며 반항한 바벨탑 건축을 무산시킨 후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며 약속하신 인류구원 계획을 실천에 옮기시니,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이며, 그가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살던 갈대아 우르는 날로 번창하고 성장하는 도시로서 농산물을 운송하는 선박들이 드나드는 항만이기도 했다. 그 지역에서는 옥수수를 비롯하여 사과와 포도 등의 과일들이 많이 재배되었으며, 그곳 사람들은 달과 별을 섬기는 우상숭배 사상에 젖어있었다.

 

데라는 홍수 후 새로운 세상의 조상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지방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방신을 섬기며, 그 신상들을 만들어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데라는 가족들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해 떠났지만 하란 땅에 도달하자 거기 정착하고 만다. 대가족을 거느리고 어렵고 힘들게 가나안으로 가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란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에게서 우상숭배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그 자신도 우상을 섬겼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그의 동역자로 선택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명하신 것은 그를 인류 최초의 선교사로 임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어째서 하나님은 우상숭배자의 아들을 인류구원 사역이란 그의 역사운영에 중대한 계획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택하신 것일까 하는 것이다. 여기 대한 답변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슴 깊이 새겨진 노아의 의로움과 순종의 믿음을 발견하셨기 때문이라 믿는다.

 

또 하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째서 아브라함에게 그가 힘들여 자리 잡고 살고 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하신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빛이 비추는 곳”이란 희망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곳에선 달과 별을 섬기는 우상종교가 성행했으며, 거기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방신상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데 아브라함에 그곳에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으니 그를 사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거기를 떠나라고 명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곳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하신 것은 “세상을 향한 모든 욕망을 내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때와 장소와 대상이 달랐을 뿐이지 그 의미는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에 네가 지금까지 애써 마련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내가 보여주는 곳을 향하여 나아가라.” 하신 명령과 “너의 개인적인 야망은 물론 친척들과 친지들 그리고 부모들까지 버리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 원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사는 이곳을 뒤로하고 내가 가라는 곳으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은 그가 전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그가 그와 같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소명을 주시며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 하신 약속은 그 어떤 값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축복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과 논리에 입각하여 생각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수반된 약속들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허망한 것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때 아브라함은 75세였고, 사라도 임신하기 힘든 나이였기에 그들이 자손들이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 해지며 그가 인류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란 것도 실현 가능성은 희박했다.

 

우상을 숭배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으며, 아브라함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논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그때까지 그가 갈대아 우르에 이루어 놓은 모든 삶의 기반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곳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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