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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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2) -죄인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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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린 행악자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23: 39-43)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두 명의 흉악범들이 그의 좌우편에서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살인범이나 국가 반역죄를 범한 중죄인들에게만 적용시키는 악랄하고 치욕적인 사형방법도 모자라 악독한 살인강도들 사이에 세운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적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증오하는 예수님을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방법으로 처형하기 위하여 계획한 것인데, 그것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시켰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700여 년 전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아들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사 53:12)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의 역사는 오로지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째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포악한 범법자들 틈에서 죽도록 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이 두 강도와 함께 세상의 멸시와 천대 속에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며 죽는 죽음으로 인간들이 죄 값을 지불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피 흘리신 십자가 아래 엎드리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같은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을 “그가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이 용서받게 하기 위함”(사 53:12)이라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갈보리 언덕에 높이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 한 가운데 달리셨을 때 사람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거기서 내려와 보라.”며 그를 비웃으며 놀려댔다. 그러자 예수님 옆의 한 강도도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며 예수님을 조롱하며 모독했다.

 

그러나 또 다른 강도는 “너는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이 사람은 옳은 일만 하신 분이다.”라며 그의 동료를 꾸짖었다. 그의 친구를 나무란 강도는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라 간청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서 사형당하는 두 강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 모두는 그들처럼 “죄의 값인 사망”(롬 6:23)의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두 강도 중 하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그의 부끄럽고 추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멸망의 길로 떠나갔다.

 

그러나 또 다른 강도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완악한 친구를 꾸짖었다. 그의 꾸지람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가 살아온 죄악 된 인생을 뉘우치지 않는 친구의 완악함을 나무람과 동시에 자기 자신은 그때까지 살아온 죄의 생활과 결별하겠다는 단호한 결단의 표현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 간청한 사실이 이 같은 그의 결단을 말해주고 있다. 그가 예수님께 그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자기를 기억해 달라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그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그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다. 평생 선한 일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극악무도한 강도에게 즉석에서 구원을 허락하신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는”(갈 6:8) 하나님의 법칙에 어긋나며, 최후의 심판 날 “행한 대로 갚겠다”(마 16:27) 하신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도 위반되는 처사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은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공을 세우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롭고 경건한 삶이나 공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상급이 될 수 있을지언정 구원에 이르는 필수 조건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은 각종 의식을 충실하게 행하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이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롬3:20).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는 사람“(엡 1:7)에게 주어지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이 구원의 원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구세주로 믿고 죄를 고백하는 죄인에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심으로 그가 약속하신 구원의 은총을 허락하셨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신음하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갈보리 언덕에 모여든 사람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혀 마땅한 죄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원받은 강도가 바라본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였다. 그는 자기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는 믿음의 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행하시는 권능을 본 적도 없었고, 예수님이 전하시는 천국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예수님은 자기처럼 극악무도한 강도에게도 영생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구세주이심을 믿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십자가 위에서 처형되어 무덤에 들어갈 죄인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주인 이시라는 사실까지도 확신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죽어 마땅한 악독한 강도가 이 같은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은 그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 간구한 사실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주저하지 않으시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 말씀하심으로 즉석에서 그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 강도는 예수님 옆의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부터 예수께서 자기네들처럼 십자가에 달려야 할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긴 가룟 유다는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했다.”(마 27:4)고 고백하였고,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로마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을 심문한 후 유대인들에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요 18:38)고 선언했다.

 

빌라도의 아내는 재판 중인 남편에게 사람을 보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세요.”(마 27:19)말해 줌으로 예수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악하고 흉악한 강도는 갈보리 언덕에 오르기 전까지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가룟 유다나 빌라도나 그의 아내처럼 예수님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을까?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평생을 죄악 속에서 산 강도이기는 하지만 구원받을 믿음을 지닌 그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는 구세주로 알아보는 영안을 허락해 주셨다고 말해도 큰 잘못은 아니라고 믿는다.

 

용서받기 힘든 숱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 이는 아무리 흉측한 죄인일지라도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은혜의 손길에 자신을 맞기는 사람들은 영생복락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말해준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겠다.” 말씀하신 예수께서 죄만을 범하며 인생길을 걸어온 악한 범죄자에게 구원을 허락하심으로 그의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예수님 좌우편에서 처형당한 강도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아무리 “나만은 의롭고 선하고 정의롭게 살았다.”고 외쳐보아도 하나님의 눈에 비친 인간들은 모두가 허물과 죄로 얼룩져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구원받은 강도처럼 우리의 더러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한 후 예수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야만 한다. 그래야만 멸망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님이 먼저 가셔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영원한 고향집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더라도 다 받아 주시고 품어주시는 그의 넓고 깊고 따뜻한 사랑의 품에 안겨 천성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들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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