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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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 -사도 바울 (바울의 2차 선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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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15:35-41)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돌아오자 안디옥 교회는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며 따뜻하게 환영했다. 선교보고를 듣고는 그들이 거둔 놀라운 선교효과를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런데 구원의 필수조건은 율법을 준수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를 하면서도 당면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이 문제로 교회에 파열음이 일어나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어 공식적인 답변을 받아오게 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총회를 열어 이에 대해 논의했다.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 당회장 야고보와 여러 사도들이 진지하게 토론한 결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에게 과도한 율법의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의했다. 기독교가 유대인만을 위한 민족종교가 아니라 모든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인류의 종교로 뻗어나가는 발판을 만든 획기적인 결정이었다.

 

구원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모든 의식을 행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진다는 초대교회의 입장을 확인한 바울과 바나바는 두 번째 선교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들의 목표는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과 성도들의 상태를 살펴보며 새로운 교회들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를 동반하기를 원했으나, 바울은 마가를 제외시키려 했다. 1차 선교여행 중 중도에서 포기한 그와 함께 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나바는 마가가 그의 생질이기도 했지만 그가 범한 과오를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다.

 

두 사도의 입장이 너무도 팽팽하게 맞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편으로 사이프러스로 향했고, 바울은 실라와 더불어 시리아와 길리기아로 거슬러 올라갔다.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때문에 다투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헤어진 것은 감정대립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신념대로 주의 일에 충성하고자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때문이었다.

 

그들이 각자의 길을 택한 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선교에 전념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다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해준다.

 

실라와 함께 선교 길에 오른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를 지나 아시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마게도냐로 방향을 바꾸어 빌립보로 간다.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째가는 도시로서 로마의 식민지였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적었던 관계로 기도할 곳을 찾아다니던 바울은 루디아라 이름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자주 옷감을 파는 부유한 여인으로서 신실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루디아의 집을 거점으로 선교하던 바울은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나 악귀를 쫓아내 주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관원들에게 잡혀 무수한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여자는 점을 쳐서 주인에게 돈을 벌게 해 주었는데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된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평화로운 도시에서 이상한 도를 퍼뜨린다고 고발했던 것이다.

 

쇠고랑을 차고 옥에 갇힌 그들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실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들이 부른 “한밤의 찬양”으로 빌립보 감옥이 선교의 현장으로 변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감방장과 그의 가족들이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사탄은 비울과 실라에게 쇠고랑을 채워 감옥에 집어넣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쇠고랑을 풀고 감옥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으로 만드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빌립보에서 “감옥 선교”까지 행해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바울의 빌립보 선교는 대성공이었다. 그 곳에서 유럽 최초의 여 성도 루디아가 탄생했으며, 그녀의 집을 거점으로 한 유럽 최초의 교회까지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실라와 루스드라에서 만나 제자로 삼은 디모데와 함께 암비볼리와 아볼로리아를 거쳐 마게도냐의 주요 도시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3주 동안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고, 예수가 곧 그리스도시라 가르쳤다.

 

바울의 강해 설교를 듣고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자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쫓아내고자 거리의 건달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돕는 야손의 집을 기습했다. 그러나 미리 정보를 입수한 바울은 그 집에 없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그처럼 증오한 것은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를 바울이 인류의 구세주라 외쳤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모면한 바울은 한밤중에 데살로니가 서편으로 90키로 정도 떨어진 베뢰아로 갔다. 도착 즉시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하자 그 곳 사람들은 말씀을 받아드려 연구하는 열심까지 보였다. 이것을 알게 된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거기까지 쫓아와 괴롭게 하자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 아덴으로 간다.

 

아덴은 로마와 더불어 널리 알려진 도시였다. 하지만 신상이 3만 개나 널려있는 우상의 도시이기도 했다. 지혜와 지식으로 그들을 따를 자가 없다고 믿었던 아덴 사람들에겐 하나님이란 존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그 같은 교만과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깨달을 수도 없었기에 그런 슬픈 현상이 생겼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기 위해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결정하던 “아레오바고”모임에 나가게 된다. 아레오바고는 물질주의자인 에피쿠로스(Epicurian)파 철학자들과 운명론자인 스토아(Stoic)파 철학자들을 위시하여 아덴의 식자들이 모여 그들의 지식과 학문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 곳에 선 바울은 종교심이 강한 그들이 만든 많은 신상들 가운데 “Unknown God"(알 수 없는 신)”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국가와 민족을 다스리시며 역사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들려준다.

 

청중의 수준과 상황에 적합한 설교의 대가인 바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서두였다. 계속된 설교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에 대해 역설했다.

 

그러나 아덴의 지식인들의 조롱 때문에 바울은 설교를 제대로 마칠 수조차 없었다. 논리적인 사고에 익숙한 그네들은 십자가와 부활은 쉽게 받아드릴 수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바울의 지적이고 열정적인 설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따라서 아덴에서는 교회도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바울의 아덴 선교가 실패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우선 아덴에서의 설교를 통해 바울은 인간의 지식과 방법으로는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울은 그 깨달음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 기록하고 있다. 비록 적은 수이기는 했지만 아덴에서도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주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실은 아덴 선교의 귀중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간 곳은 2차 선교여행의 종착지인 고린도였다. 고린도는 기원 전 46년 줄리어스 시저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가 된 도시로서 상업과 스포츠의 중심지였다. 물질이 풍부했기에 죄악의 물결도 높았으며, “소돔과 고모라 보다 악한 도시”라 불릴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처럼 험악한 곳에 홀로 온 바울은 로마에서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이었으며, 바울처럼 천막 만드는 기술자였다.

 

바울이 죄악이 들끓는 고린도에서 그들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은 악의 도시 고린도에 그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일하며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 복음을 전했다.

 

바울의 고린도 선교에 있어 특기할 만한 것은 자비량 선교를 했다는 사실이다. 사도들의 당연한 권리인 재정지원(갈 6:7)을 성도들에게서 받지 않고, 어린 시절 배운 기술로 천막을 만들어 판 수입으로 생활을 하고, 어려운 성도들을 돕기까지 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사도도 아니며, 그가 가르치는 교리도 잘못된 것이기에 자비량 선교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바울은 흔들리지 않고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나누어 주는 마음으로 자급자족하는 선교를 계속하며, 가끔 떠나온 빌립보 교회의 지원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곤 했다. (빌 4:5)

 

바울의 사랑과 열정의 선교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유대인들은 그를 이단자로 몰아 총독 갈리오에게 고발한다. 갈리오는 “그가 불법이나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너희들의 법에 관한 것이라며 관여하지 않겠다.”(행 18:12-16)며 그들의 기소를 기각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바울을 도운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잡아 심하게 때린다.

 

베뢰아에 남아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기는 했지만 집요하게 그들을 박해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심신이 피곤해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날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때 예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고 계속하여 복음을 전하라.”(행 18:19)고 위로하며 격려하신다.

 

용기백배한 바울은 1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며 복음을 전한 후 에베소에 들렸다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을 거쳐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옴으로 2차 선교여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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