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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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사도 야고보(요한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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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는 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 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 5:1-11)

 

 

“야고보”하면 사람들은 사도 요한의 형 야고보를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의 인물로서 초대교회의 설립과 성장발전에 크게 기여한 두 명의 야고보가 더 있으니, 하나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 이름이 같은 이 세 사도들을 구분하기 위하여 요한의 형은 “큰 야고보“(The Great James), 예수님의 동생은 “의로운 야고보“(The Righteous James), 알패오의 아들은 “작은 야고보“(The Less James)라 부르기도 한다. 


세 야고보 중 우리에게 제일 잘 알려진 요한의 형 야고보는 동생보다 한두 살 위로서 베드로와 같은 벳새다 출신이다. 어업에 종사하던 아버지 세베대는 어선을 소유하고 일꾼들을 고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막 1:16-20) 비교적 성공적인 어부였던 것 같다.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촌자매 지간이었다. 생활도 중류급 이상이고, 혈육적으로 예수님과 가까웠던 야고보는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셨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 이처럼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부르심에 응하며 소유를 포기하고 부모까지 뒤로 하고 예수님을 쫓은 것은 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향과 친척과 집을 떠나 황막한 광야를 향해 떠나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하셨듯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의 뒤를 따르는 야고보를 예수님은 지극히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항상 열두 제자들과 함께 다니셨지만 베드로, 야고보, 요한 셋만을 대동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 중 한 번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였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막 5:37; 눅 8:5) 


예수님이 변화 산에 오르실 때도 그들 셋만이 주님을 수행했다(마: 17:1-8; 막 9:2-13; 눅: 9:28-36). 야고보는 예수님의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과 주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그의 죽음에 관해 말씀하시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에도 야고보는 주님 곁에 있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과 제자들에게 고별설교까지 끝내신 후에 기도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실 때도 야고보는 베드로, 요한과 함께 주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땀이 핏방울 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동안 잠들어 버린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마 26:40-41)라 하신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참으로 외롭고 괴로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더 가슴 아프셨을 때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 다음의 권한과 영화를 누리게 해달라고 청했을 때였다(막 10:37). 그들의 어머니 살로메가 야고보과 요한 두 아들을 예수님 옆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했을 때 주님의 아픔과 슬픔은 분노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구하는지 모르는 구나.”라 들려주신 후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잔이 그의 고난과 죽음임을 몰랐던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그들은 그 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야고보는 예수님에게 말세의 징조에 관해 물은 제자이기도 하다. 야고보가 예수님에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관해 물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 외에 안드레도 함께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종말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며, 난리와 전쟁에 관한 소문들이 난무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그때에는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우며, 주를 따르는 사람들을 향한 세상의 핍박이 날로 심해짐과 동시에 갖가지 불법이 심해지며 사람들 사이에 미움과 증오와 불신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 말씀해 들려주신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이기고 견디는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밝혀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그의 가르침을 3년이나 받았으면서도 야고보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간을 위한 속죄의 죽음인 것임을 확실히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 초대교회가 설립되고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앞장 서는 사도가 되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순교 당할 때까지 10여 년 간의 야고보의 행적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기간 동안 야고보가 스페인에 복음을 증거하는 주역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그것과 연관되어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야고보에게 스페인으로 가라고 지시한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였다고 한다. 


어느 날 야고보는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리아가 스페인에 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을 듣고 그 곳에 가서 성전을 지었고, 스페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C. Bernard Ruffin이 쓴 “The Twelve"에서 말해주는 야고보의 스페인 선교에 관한 전부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얼마 후에 헤롯 대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 유대교적인 정책을 펴고 있던 아그립바 왕은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의 하나인 야고보를 죽여서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고자 한 것이다. 


야고보의 순교와 관련하여 초대교회 교부 중의 하나인 클레멘(Clement of Alexandria)은 좀더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야고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자 아그립바 왕이 그 선고를 인준하여 야고보의 처형을 명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야고보가 기독교 역사상 순교한 최초의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과 그의 순교가 지니는 의미다. 야고보가 예수님 다음 자리에 그를 앉혀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때 야고보는 즉석에서 마실 수 있다고 답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 26:39)라 기도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피하고 싶으셨던 고난의 잔을 마시셨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잔의 의미조차 모르면서 그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그 약속의 대가로 그 자신을 복음 제단에 바치는 순교자가 된 것이다. 


그가 흘린 순교의 피는 초대교회의 초석이 되었으며, 그 후 2천여 년 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오늘 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교회들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마시는 잔을 그들도 마실 수 있다고 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께서 “너희들은 내 잔을 마시겠지만 내 좌우편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이들이 앉게 될 것이다.”(막 1:30-40) 하신 것은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과 영광은 죽도록 충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누릴 것임을 일러주신 것이다.(계 3:21)


야고보는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 사회적 지위도 없었고,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어부였을 뿐이다. 그런 그를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주님을 따랐다.


예수님을 섬기면서 우레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난폭하고 성급한 성품이 다듬어 지고, 세상을 향한 강한 욕망도 가라앉아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사도가 된 인물이 야고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주어진 인생을 불사르다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순교한 복된 인생을 살았다. 


사도 야고보의 삶을 보면서 우리들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온전히 주께 바치며 인생의 경주를 달려야만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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