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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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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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 10:35-40)

 

 

 베드로가 예수님을 제일 사랑한 제자였다면 요한은 예수께서 제일 사랑한 제자였다. 베드로는 즉흥적이며 쉽게 행동하는 편이었지만 요한은 냉정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료 깊은 제자였다. 베드로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대담했지만, 요한은 소극적이고 매사에 조심하는 신중성을 보였다. 베드로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요한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을 때 베드로는 중년이 되어가는 나이었지만 요한은 이십대 중반의 젊은이였다.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은 여러 면에서 달랐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베드로도, 요한도 예수님께 사랑과 충성을 바친 제자였다는 점이다.


성품과 재능은 달랐지만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님의 수족이 되어 주님의 사역을 도왔으며,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요한은 기원전 3년 아버지 세베대와 어머니 살로매 사이에서 태어났다. 벳새다에서 자라나고 어부였던 아버지를 도와 고기를 잡았다는 것 외에 그의 성장과정에 관해 알려진 것은 없다. 


요한은 그의 형 야고보와 베드로처럼 초등교육 과정을 마쳤으며, 충실하고 경건한 유대교인 이었고, 안드레와 야고보가 그랬듯이 세례 요한의 제자이기도 했다.


요한이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것을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세례 요한이 그 곳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며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 했을 때였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갈릴리 호수를 찾은 예수님을 뵈었을 때였다. 그 날 새벽에 그의 동료 베드로가 밤새도록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 명하신다. 


베드로가 그 말씀대로 하자 엄청나게 많은 고기들이 잡혔고, 이에 놀란 베드로가 제발 그를 떠나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 하신다.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물론 곁에 있던 야고보와 요한도 그들의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다(눅 5:1-11).


그 후로 요한은 베드로와 그의 형 야고보와 더불어 항상 예수님을 곁에서 모시는 “삼총사 제자”(inner circle)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현장에 삼총사의 일원으로서 함께 있었으며(막 5:35-43),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변화 산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수행한다(마 17:1-8; 막 9:1-8; 눅 9:28-36), 


그들 세 제자들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슬퍼하고 고민하며 기도하실 때도 예수님과 지척에 있었다(마 26:36-46; 막 14:32-42; 눅 22: 39-46). 이처럼 요한은 그 스스로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요 13:23)라 했을 정도로 예수님의 총애를 받은 제자였다.


요한은 젊은 시절 다혈질이며 과격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에 한 사마리아 마을에 들리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박대하자 흥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요한은 절제력이 부족했었다(눅 9:51-56).


그때 예수님은 요한을 꾸짖으셨고, 요한의 그런 성급하고 과격한 성격을 알고 계셨기에 그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보이니게”(우레의 아들)란 명칭까지 붙여주셨다. 


그는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원하는 강한 욕망과 야망도 지니고 있었다.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에게 영광의 날이 이르면 그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하기 때문이다(막 10:37). 마태복음에는 그런 청을 한 것은 그들의 어머니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마 22:20-21). 


그러나 누가 청했느냐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직접 했든, 그들의 어머니 살로매가 했든 예수님의 측근으로 권력을 누리게 해달라고 한 것은 그네들이 부귀영화를 사모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이 예수님께 그들을 중용해 달라고 특청한 것은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중이었기에 더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님 최측근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모르고 있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그들의 목적이 높은 지위에 으르려는 데 있다면 그것처럼 잘못된 것은 없음을 지적하시며 “나는 섬김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목숨을 버리려 왔노라.”(막 10:45) 말씀하시지만 그들이 그런 주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보내주신 성령을 받는 후였다. 


하나님의 아들을 섬기는 대가로 권세를 탐하는 마음을 지니기는 했지만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주께서 심문 받으시는 대제사장의 집까지 갔었고(요 18:15-16), 예수님의 처형당하시는 갈보리 언덕에도 올랐었다.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그 곳에 가지 못한 것은 겁이 나서라기보다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괴로워서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한이 마리아를 부축하고 십자가 밑에 섰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그녀를 어머니로 모시라고 분부하신다(요 19:26-27).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신 사실을 근거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주님의 친동생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한은 독신이었고, 그의 어머니 살로매는 마리아와 사촌지간 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예수께서 그의 어머니를 그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신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날 예수님에게서 마리아를 돌보라는 분부를 받은 요한은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예루살렘 시온 산 위에 있었던 그의 집에서 정성껏 모셨다고 전해진다.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이 부활하신 새벽에 그의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그날 아침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간 여인들이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그들이었다. 


그들이 무덤에 갔을 때 무덤 입구에 노였던 바위 돌은 옮겨져 있었고, 무덤은 비어 있었다. 놀란 여인들이 산을 내려와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베드로와 요한이 곧바로 달려갔다. 먼저 무덤에 도달한 요한은 베드로를 기다렸다. 요한다운 조심성과 신중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뒤따라 도착한 베드로가 망설이지 않고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요한이 그 뒤를 따랐다. 여인들의 말대로 텅 빈 무덤에 주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이 모시 천과 같이 놓이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한 요한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최초의 인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더불어 초대교회가 형성되어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도가 되었다. 오순절 날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3천 명을 회개시키는 설교를 할 때 그 옆에 있었으며, 성전 앞에서 베드로가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울 때도 그와 함께 있었다. 


집단 지도체제였던 초대교회였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활약과 영향력은 다른 사도들과 비교할 수 없이 컸다. 이 사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갈 2:9)는 사도 바울의 증언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다. 바울에 의하면 요한의 형 야고보도 예수님을 섬길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과 행동을 같이 했다. 


그러다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대부분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요한은 주후 49년 예루살렘 교회 종교회의가 끝날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다 로마로 가서 먼저 간 베드로와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한은 로마에서 네로의 기독교 탄압으로 옥에 갇혀 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탈출하며 에베소로 가서 주후 67년 경 순교한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러다 주후 81년에 로마 황제 도미탄에 의해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를 기록하게 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로 시작되는 요한계시록은 우리 모두 책 속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며 반드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복된 자들이 되라고 가르쳐준다. 


요한은 이 책 외에도 요한복음과 요한 1서, 2서, 3서를 기록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한 영적인 복음서로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받아드려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쓴 것이다. 


요한 1, 2, 3서 세 권은 믿는 자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랑으로 엮인 삶을 살아야만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여지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요3: 2)고 가르치고 있다. 


성격이 급하고 “우레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화를 잘 내던 요한은 사랑의 화신이신 예수님의 품 안에서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백세가 가까운 나이에 들것에 실려 예배장소에 나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그가 한 설교는 언제나 “사랑하는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였다고 한다. 


떠날 때가 가까워 온 것을 느낀 요한은 그의 무덤을 파놓게 하고, 죽음이 임박하자 제자들에게 부축되어 그가 잠들 곳으로 가서 기도한 후 둘러선 제자들을 향해 “평화롭게 서로 사랑하며 사세요.”라 말하고 하나님 곁으로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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