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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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니고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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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16)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 19:39-40)

 

예수께서 나사렛 목공소를 떠나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메마른 가슴을 생명의 말씀으로 채우려는 이들, 각종 불치의 병으로 신음하는 병자들,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허덕이던 사람들이 원근 각처에서 예수님을 찾아 몰려든 것이다. 


그들 중에는 혜성처럼 나타나 민중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청년 예수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 나온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헤어나기 힘든 인생의 수렁에서 벗어나 그 무언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새로운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어느 날 밤에 한 지체 높은 유대인의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니고데모라 이름 하는 그는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대인의 지도자였다. “승리하는 사람”, 또는 “백성의 정복자”란 의미를 지닌 니고데모는 부자였다. 


그가 부유한 사람이었음은 후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33킬로그램이나 가지고 온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요 19:39). 부자가 아니고서는 그처럼 많은 향품을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율법에 정통했음은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 또한 뜨거웠을 것이다. 그는 산헤드린 회원이기도 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던 로마제국은 넓고도 많은 점령지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현지 실정에 적합한 지방자치정부를 허용하였다. 그리고는 로마의 유익에 반하지 않는 한 그 자치정부의 자율권을 최대한으로 인정해 주었다.


이 같은 로마 정부의 정책에 의해 결성된 것이 산헤드린 공회였다. 이 공회는 총 7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등이 회원이었으며, 의장은 로마정부의 임명절차를 밟아 대제사장이 맡았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인 안네스가 의장이었던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들의 최고 통치기관으로서 종교적, 사회적 전반에 걸쳐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사법권을 발동하여 로마정부의 인준을 얻어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었다(마 26:3; 행 4:5, 6:12, 22:30). 니고데모가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음을 그가 바리새인 중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말해준다.


거물급에 속하는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직접 방문한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많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나사렛 목수 출신 예수라는 젊은이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때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모든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요주의 인물로 간주한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그가 예수님을 대면했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이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십니다.”였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어째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일까? 우선 대다수의 바리새인들의 경계의 대상인 그를 공개적으로 만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산헤드린 회원이 될 만큼 박식했으며, 율법에 정통했지만 자기가 모르는 그 무언가를 예수님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했던 니고데모로서는 조용한 시간에 예수님과의 독대가 필요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높은 신분의 유대인의 관원임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니고데모를 향해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말씀하신다. 


갈릴리의 멸시 받는 선지자 예수님이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는 하늘나라는 힘에 의한 정치적인 혁명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은 누구나 그 나라의 시민이 될 자격을 지녔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니고데모는 장성한 사람이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예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구약을 잘 아는 니고데모가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겔 36:25-26)란 말씀을 상기하며 물과 성령으로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성령의 역사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소하고 기이하게 여기자 주님은 율법선생이 어떻게 구약이 말하는 성령의 역사를 모르냐고 가볍게 책망하신 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들려주며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이루실 구원사역을 일러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매며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불 뱀들을 보내어 물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이때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쳐다보게 하신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 뱀을 바라본 이들은 죽지 않고 살아났다. 
이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며 장대위에 달린 놋 뱀처럼 그가 십자가 위에 달리실 텐데 그를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일러주신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선언하신다.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대원칙이며, 세상에 있는 모든 성경책들이 소멸되더라도 이 말씀만 남으면 기독교를 영원한 구원의 종교로 남게 할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구원은 율법을 충실히 준수한다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율법을 온전히 지켜야 의롭게 되며, 그 결과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이 말해주는 “구원의 길”이라면 아무도 그 길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갈 2:16). 


구원은 혈통이나 민족과도 관계가 없다. 구원은 우리의 죄 값을 하나님께 지불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믿고 그를 구세주로 받아 드리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이 귀한 진리를 니고데모가 제대로 깨달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다. 한밤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후 니고데모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과 독대한 후 니고데모가 주님의 은밀한 제자가 되었음에는 틀림없다. 그가 예수님을 따랐거나 주님의 추종자가 되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간직하고 유대 땅 구석구석을 다니시며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무리를 돌보시는 예수님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체포하려 하자 니고데모가 나서서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 7:51)고 주님을 옹호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나서서 예수님을 섬기지는 못했지만 체포될 위기에 처하신 예수님을 대담하게 변호할 정도로 니고데모의 믿음은 성장했던 것이다.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다.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에서 처형당하실 때 그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있었다. 다만 요한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명의 여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을 쓰라린 가슴을 않고 지켜보았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그 자신을 위해 마련한 바위동굴에 매장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비싼 향품을 들고 나온 사람이 니고데모였다. 하기 힘든 결단이요, 엄청난 용기의 발로였다. 그가 예수님의 추종자임을 공식적으로 공포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통하여 거듭남의 의미와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 가르침을 직접 받은 니고데모는 열두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수행하며 섬기지는 못했지만 주께서 걸으시는 고난의 길을 지켜보다 위험에 처한 예수님을 과감하게 변호하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장례예식을 행하는 결단과 용기를 발휘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역할이 필요할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예수님을 보호했으며, 주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사랑과 헌신으로 장식해 드린 니고데모의 삶은 믿는 자 모두가 본받아야 할 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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