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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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불의한 청지기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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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의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말 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눅 16:1-9)

 

 

예수님의 비유는 쉬우면서도 귀중한 인생의 교훈과 깊은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 그 특징 중의 하나다. 그런데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예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도 선명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자세히 읽어보면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는 다른 어떤 비유에 못지않은 특수하고도 소중한 믿는 자의 삶의 지침과 하늘의 진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부자가 자기 청지기가 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을 듣고 “더 이상 네게 내 재산을 맡길 수 없으니 하던 일을 다 정리하라.”는 해고통지를 한다. 순간 청지기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막노동을 하자니 힘이 없고, 부잣집 청지기 경력을 가지고 빌어먹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그는 당면한 난국을 타개 할 수 있는 “신의 한 수”을 찾아낸다. 청지기는 그의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다 놓고 먼저 온 사람에게 지는 빚이 얼마냐고 묻는다. 그가 감람유 100말이라고 하자 “당신 증서에 50말이라 고쳐 쓰라.” 말한다. 그 사람의 빚을 반으로 탕감해 준 것이다. 그 다음 밀 100석을 빚진 사람의 증서는 80석으로 고쳐준다.


이 같이 청지기는 자기 마음대로 빚진 사람들에게 특혜를 베풀어 준다. 주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요리한 불법행위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청지기가 한 일을 칭찬한다. 그 주인에 그 청지기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처사였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듣는 이들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 같은 비유를 들려주신 것일까? 이 비유에 대한 의아심을 해소시키며, 이 비유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유대사회에서 주인과 청지기의 관계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청지기들은 주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서 주인의 모든 재산을 지키고 관리하는 전적인 책임과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 시기에 돈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선정한 청지기에게 집이나 농장을 관리하게 하고 장기여행을 하거나 정세가 불안하고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유대 땅을 떠나 안전한 곳에 가서 살기도 했다. 


그러기에 주인의 재산을 돌보는 청지기는 그의 재량권을 최대로 발휘하여 주인의 더 큰 신임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 주인의 재산을 착복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 발각되어 문책을 당하는 청지기들도 있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청지기는 그런 부류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믿었던 청지기가 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을 들은 주인은 그를 불러 그 동안의 모든 업무기록을 제출하고 그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한다. 그 청지기가 소문대로 주인의 돈을 횡령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떤 이는 파면 당하면서도 침묵한 것을 보면 소문대로 그가 주인의 재산을 가로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가 주인의 돈을 빼돌려 숨겨놓았다면 청지기 직을 그만둔 후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라 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소문을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그의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증빙서류를 위조하여 그들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불법 행위였다.


따라서 주인은 불법을 행한 청지기로 하여금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주인은 청지기에게 일을 지혜롭게 처리했다며 칭찬했다. 주인이 자기 청지기의 범법행위를 은폐하는 범법을 행한 것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주인과 청지기가 행한 불의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율법을 범하는 죄까지 저질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라.”(출 22:25) 명하셨다. 


레위기 (25:36)와 신명기 (15:8, 22:25) 에도 가난한 자들을 도울 것이며,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리대금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있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이자놀이를 한 것이 당시의 유대사회였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그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채무자들 중 한 사람이 빚진 감람유 100말은 오늘 날의 868 갤론에 해당하는 양이었으며, 이만한 양의 감람유를 생산하려면 적어도 150 그루의 감람나무를 재배해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빚에 대한 이자는 일 년에 100%였다. 밀 100석을 추수하려면 100에이커 땅에 밀을 재배해야 했으며, 밀 100석에 대한 이자는 년 25%였다. 이것은 이 비유의 주인공인 주인과 청지기 모두 유대사회에서 금지된 고리대금업을 행한 범법자들이었음을 말해준다. 


두 사람 모두 불법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주인은 주종관계를 내세워 청지기를 해고했고, 해고당한 청지기는 문서를 위조하여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는 또 다른 불법을 행한 것이다. 그런데도 주인은 범법자 청지기를 처벌하지 않고 칭찬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청지기가 주인도 모르게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은 자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가 불법으로 감람유 100말을 50말로, 밀 100석을 80석으로 탕감해 준 것은 채무자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베푼 처사였다. 따라서 그들은 파면 당한 청지기가 그들을 찾아오면 환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청지기가 문서를 위조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옳지, 내가 이렇게 하면 그네들이 나를 박대하지 못할 것이다.”며 무릎을 친 까닭이 여기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청지기 직을 상실했다고 그를 문전박대하면 그와 공모하여 빚 증서를 고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까지 할 계산도 청지기는 하고 있었을 것이다. 금강산 가는 길에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의 비밀을 세상에 알리겠다며 그들에게서 금전을 뜯어내던 봉이 김선달 처럼 말이다.


불의한 청지기가 저지른 불법으로 주인은 상당한 재산상의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주인은 재산의 손실보다 더 큰 이득을 얻었다. 어려운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부과하기는 했지만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는 인간미가 넘치는 관대한 사람이란 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그것이었다. 


주인은 그의 청지기가 재산관리를 잘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 몰래 문서를 위조하여 그의 재산을 축내었지만 그를 고리대금업자에서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인물로 만들어 주었기에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비유를 마치시면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물질을 어떻게 써야 하나를 일러주신 말씀이었다. 


청지기는 자기 것 아닌 주인의 돈으로 빚진 자들에게 선심을 베풀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청지기가 이용한 주인의 돈도 따지고 보면 그의 것 아닌 하나님의 것이란 사실이다(대상 29;14). 


따라서 청지기는 결국 하나님의 돈을 사용하여 채무자들의 무거운 빚을 가볍게 해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그들의 소유를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사람들이나 꼭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유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하신 후에 예수께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말씀하신 것도 우리 주위에서 가진 것 없어 소외 당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돈으로 무거운 빚진 자들의 짐을 내려줄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우리에게 할당된 물질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했더라도 다 남겨두고 빈손으로 생명의 주인 하나님 앞에 가야할 날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그 날이 도둑같이 오기 전에 주어진 물질을 우리들이 가야할 하늘나라에 쌓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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