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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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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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 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고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쩜이뇨?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 도다.’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온 지방에 퍼지니라.”(막 1:21-28)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곱 개 기적만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공관복음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각종 기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 것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4:31-37)에 나타나 있는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처주신 것이다.


마가는 이 기적을 기록하기에 앞서 예수님의 전령으로 세상에 온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에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해주는 음성을 들은 사실을 밝힌다. 


이어서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과 그와 더불어 인류구원 사역에 동참할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를 선택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마가는 예수님이 지상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하신 준비과정을 설명한 후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복음증거에 나선 것을 증언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가와 누가가 말해주는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기적은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서 행해졌다. 회당의 기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때로(BC 607-537)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민족의 포로가 되긴 했어도 하나님의 선민 된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시로 모여 기도하고 찬송한 것이 회당의 시초가 되었다.


그 후 유대인들이 정착하는 곳에는 어디나 회당이 세워져서 그들의 예배처소가 되었던 것이다. 회당 모임에는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고, 회당장의 지명을 받으면 누구나 강연이나 가르침 혹은 설교까지 할 수 있었기에 예수께서 사역하시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가 회당이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자주 회당에 가셔서 하늘나라의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첫 안식일에도 회당에 모습을 들어내셨던 것이다. 그날 예수님이 회당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놀랐는데 그 까닭은 그가 가르치는 것이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 있는 자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율법서나 선지서를 가르치던 서기관들은 구약의 권위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권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존경받는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을 모방하거나 인용하곤 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그 누구의 권위에 의존하지도 않았고, 다른 어떤 가르침을 인용하지도 않았다. 오직 그 자신의 권위로 진리만을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권위는 곧 하나님의 권위였으며, 그가 가르치는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기에 전능자 하나님의 권위로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압도당하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 같은 권위로 능력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선다. 모두가 놀라서 쳐다보니 그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악한 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으며, 고대사회에선 악령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복음서에 귀신 들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지방에도 악한 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예수께서 엄숙하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중에 불현 듯 일어선 사람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이 거룩한 자니이다.”라 외친 것은 단순히 예배를 방해 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탄이 예수님의 인류구원 사역에 노골적인 도전을 한 행위였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향해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외친 것은 귀신 들린 사람이 아니라 그의 몸과 마음을 장악하고 있던 악한 영 곧 마귀라는 사실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귀는 천사장 미가엘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 강하고 악한 존재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자 거기 대응하기 위해 마귀는 재빨리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그들을 조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령이나 귀신의 형태로 목표한 사람을 사로잡은 마귀는 그의 생각과 능력과 의지를 한꺼번에 장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같은 악하고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히면 비참한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마귀는 그의 포로가 된 불쌍한 사람의 입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예수께서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오신 것을 알고 있다며 예수님의 면전에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마귀의 당돌한 전면도전을 받은 예수님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단호히 명령하신다.


여기서도 우리는 예수께서는 마귀가 귀신들린 사람을 통하여 그에게 도전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도전한 것은 귀신 들린 사람인데 예수님은 마귀에게 “조용하고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귀는 강하고, 악하고, 간교하다. 그러나 마귀의 강함과 간교함도 예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당당하고 대담하게 “내가 너를 아노니 네가 나를 어떻게 할 것이냐?”대들던 마귀는 “떠들지 말고 그에게서 나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그로부터 떠나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누구도 대적 못할 권위와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악귀들이 꼼짝 못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니 말이다.” 수군거리면서 예수님을 우러러 보며 두려워하게 된다. 동시에 예수께서 행하신 이 같은 권능은 즉시 갈릴리 온 지방에 퍼져나갔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에서 회당에 가신 것은 기적을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회당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가르치려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마귀는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증거 하시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님과의 대결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범할 수 없는 명령에 대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백기투항 한 것이다. 


이 장면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하심으로 통쾌하게 사탄을 물리치시던 일을 떠오르게 한다. 그때 머리를 싸매고 도주했던 사탄이 다시 나타나 예수님의 앞길을 막으려 했지만 즉시 떠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혼비백산하여 도망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악령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하며 그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마귀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예수님에게 덤벼들었지만 마귀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본분을 발휘하며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귀의 손아귀에 붙들리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다. 마귀의 노예가 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축복된 존재이면서도 마귀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삶을 살며 파멸을 향한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권능의 손에 이끌리어 사는 사람은 앞을 가로막는 험산준령을 타고 넘으며 찬란한 하늘나라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말씀으로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시며,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예수님은 늘 동행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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