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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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맞이하며
daekim

 

 

또다시 한 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이 해의 마지막 달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인다. 못다한 일들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난 몇 년 전부터 12월에는 꼭 참석해야 할 연말 행사나 모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조용히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


올해도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너무도 빨리 가버린 지난 열두 달을 뒤돌아보니 다시 한 번 “시간을 허비한 죄”를 범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짐을 느끼게 된다. 수북이 쌓여있는 못다한 인생의 과제들을 해결한 것이 별로 없음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년에 특별히 성취한 것은 없어도 양심과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위해 비겁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그러던 중 문득 성탄절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깨닫는다.


다섯 살 되던 때부터 내 기억 속에 산적된 크리스마스에 얽힌 추억들은 많기만 하다.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12월의 차가운 겨울 밤공기를 마시며 우리 집 앞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는 교회 성가대원들을 맞아드리던 어린아이 때의 크리스마스 날 새벽. 산비탈 위에 엉성한 나무 조각들로 세워 만든 피난 초등학교 교실 벽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성탄장식을 한 후 그 곳을 찾아오는 서양 선교사들에서 빵과 과자를 받아먹으며 기뻐하던 부산 피난시절의 성탄절. 


초롱불을 밝혀 들고 밤새워 교인들 집을 찾아 다니며 성탄노래를 부르고 그들이 안겨주는 선물들을 모으는 재미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지내던 고등학교시절의 성탄전야. 우이동 골짜기에 있는 민가를 빌려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고요하고 거룩해야 할 밤을 시끄럽게 만들며 지낸 대학시절의 어느 성탄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이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의미 있는 성탄절을 보냈노라.”고 내세울 수는 없는 것들이다. 제대로 몰라서 그러긴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구세주로 맞아드린 행위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가 2,000여 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날이다. 하나님은 죄 범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시면서 죄 짐을 지고 허덕이는 인간들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의 실현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이다. 


만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사명을 지니고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시며, 눈 먼 사람을 다시 보게 하시며, 억압받는 자에게 자유를 주셨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의 적대감은 크기만 했으며, 그들 사이엔 건널 수 없는 넓고도 깊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선포하신 천국복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음은 물론 국가와 민족과 인종간의 간격도 전혀 없다. 한 분 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자매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의 분기점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는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이거나 물건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예수가 오심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를 가로 막았던 높고도 두꺼운 벽은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믿음의 형제자매들로 변한 것이다. 


성인과 죄인들을 격리시켰던 긴 다리도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형성된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천성을 향하는 순례자들이 된 것이다. 이 같이 놀라운 변화를 인간 세상에 가져다 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실 때 사람들은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 그가 편히 누울 방 한 칸조차 마련해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베들레헴의 한 허술한 여관 마구간에서 몸을 풀어야 했다. 그러나 마구간 한 구석 차가운 볏 집 위에 마리아가 정성들여 준비한 강보에 쌓여 누우신 아기 예수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날 밤 하늘에선 수많은 천사들이 캄캄한 밤하늘을 광명으로 물들이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 소리 높여 찬송했기 때문이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로부터 구주탄생의 기쁜 소식을 듣고 달려가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렸으며, 동방의 박사들이 멀고도 험한 길을 별의 인도함을 받고 찾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했음도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던 밤 방이 없다며 마리아와 요셉을 마구간으로 내몬 여관 주인의 처사는 참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태어날 아이가 그리스도인 줄 몰라서 그랬다는 구차한 변명이나마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이며, 그 날 태어난 아기 예수가 누구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성탄절이 와도 예수님을 위한 방을 우리들 마음속에 마련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Merry Christmas!"를 되풀이하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전해 주면서도 정작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서산 너머로 사라져 가는 2017년이란 해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 해를 보람되게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줄 안다. 그러나 다가오는 성탄절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따뜻하고 아늑한 방을 가슴속에 마련한다면 “금년도 헛되이 보냈다.”는 후회와 자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예수님을 가슴 한복판에 모시고 맞이하는 이들의 삶은 예수께서 주관하고 인도하셔서 남은 모든 날들을 보람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실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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