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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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행함으로 얻는 천국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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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 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한다고 당당하게 내세우면서도 주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천국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고 하신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 들려주신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현실적인 감각으로 느끼며 이해함으로 확실히 깨달을 수 있도록 들려주신 말씀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건축자와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어리석은 건축자의 비유다.

 

땅을 깊이 파서 단단한 기초를 다진 다음 그 위에 건물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건축의 기본 원리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법칙을 무시하고 집을 짓는 이들이 적지 않은 까닭은 견고한 기반 위에 세워진 집과 약한 기초 위에 지은 집 중 어느 것이 안전한가를 보기만 해서는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무런 기반도 없이 강변이나 호수 가에 지은 집이 더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생각되는 것이 그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폭풍우가 몰아치면 견고한 기반 위에 지어진 집은 안전한 포구와 평안한 안식처의 역할을 하지만 아무런 기초도 없이 모래 위에 선 집은 무너져 내려 거기 살던 사람들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화려하고 넓은 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들은 모두가 진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보인다. 하나같이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하며,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교회의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참되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듯한 그들 삶의 기반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환상적이면서도 견고한 외형을 갖추고 우뚝 서있는 집들이 어떤 기반 위에 세워진 가를 알기 힘든 것처럼 입술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며 동분서주하는 믿는 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겠다는 각오와 결단과 의지가 있는지는 그들의 외형적인 신앙생활만 보아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줄기찬 빗줄기와 광풍에 지붕과 벽이 무너지고 갈라지며, 범람하는 물에 집이 떠내려가는 인생의 폭풍우가 몰아치면 참된 믿음의 기초 위에 서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확연하게 들어나게 된다. 신학자 A.B. Bruce는 그의 “공관복음 주석”에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는 이들과 그런 믿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은 극심한 시련이 그들에게 찾아올 때 구별된다.”고 말해준다. 설사 인생의 폭풍우를 만나지 않고 삶의 종점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최후의 심판관 예수님 앞에서는 그들의 믿음의 기초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30여 년 전에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롭고 담대하게 증거하던 젊고 유능한 분이 있었다. 사역지가 미국이었지만 여러 번 토론토에 와서 집회를 하였는데 한 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죽어 하늘나라에 올라가 그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이들을 내려다 보며 “나는 광명한 천국에 와있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려는 순간 예수님이 “너는 할 일이 많으니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라.”하신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께 청원하겠다고 했다. “주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는 괴로움과 죄로 가득한 세상에 다시 가지 않으렵니다. 이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이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이 시작됨을 확신하며 천국을 사모하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한 번에 느껴지는 그 말은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런데 몇 년 후 나는 실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고, 그 순간부터 그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름 있다는 한의사들에게 침과 뜸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까지 나가 온갖 좋다는 약초들을 다 구해 먹으며 전국 각처를 헤맸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흉측한 몰골이 되어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죽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믿는 자가 맞이하는 죽음은 영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던 그가 막상 죽음이 다가오자 불신자 보다 추한 모습을 보이며 조금이라도 더 살겠다고 몸부림치다 숨져간 것은 그가 지은 화려한 인생의 집의 기초는 너무도 초라하고 연약한 것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고 그를 “주”라 부르는 믿음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그 믿음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라 시인하며, 머리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에 동의하는 이들 모두에게 자동적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지 못하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가 구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하며 머리로 인정하고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영생의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기에 언제 생의 종말이 찾아와도 웃으며 갈 수 있다던 분이 죽는 것이 두려워 조금이라도 생을 연장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성도들 보기에 민망하고 부끄럽게 생을 마감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돋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대로 행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그를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달라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지녀야 할 자질과 품성이 무언인가 말씀해 주신 후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니 죄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고 정화하며, 땅 위의 부패를 방지하라”고 일러주시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날로 싸늘해지는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길을 돋우며,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며, 형식과 위선과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큰 가치를 부여하기에 그것들을 추구하지만 믿는 자들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그 곳에 재물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시다. 


 이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몸과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다.(롬 12:1-2) 믿는 자들은 이처럼 예수님을 닮아가야만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과 딸이 될 수 있는 것이다.(마 5:9, 44-48)


 예수께서는 산 위에서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무엇을 해야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정화시키며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심과 동시에 그 가르침대로 행해야만 혼탁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밝혀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결론의 말씀은 세상의 빛과 소금되어 살아야만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 어떤 폭풍우에도 무너지지 않고 굳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심한 인생의 풍랑이 닥아 와도 이겨내는 승리자가 되어 천국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산상수훈의 결론은 “내가 너희에게 이로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에서도 명시되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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