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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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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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임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며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1-5) 


 
 산상수훈의 서두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지녀야 할 품성과 자질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리고는 그들이 세상에 미쳐야 할 영향과 행하여야 할 의와 경건, 그리고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에 관해 언급하신다. 이처럼 믿는 자들의 품격과 그들의 교회에서와 사회에서의 역할과 사명에 관해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시는데 이는 그의 제자들에게 믿는 자들이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임과 동시에 지침이기도 하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서는 기독교인들은 물론 불신자들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믿는 자들 중에서도 이 말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이 말씀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그들의 과실이나 잘못을 들추어내지 말라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말씀을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까지 금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해석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취지는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법기관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을 금하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과오나 범죄를 눈감아 주거나, 타인을 향한 비평이나 비난을 일체 삼가며, 진실과 거짓 또는 불의와 정의를 밝히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산상수훈에 수록된 모든 예수님의 설교의 중심에는 “믿는 자의 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달라야 한다.”(마 5:10)가 깔려 있다. 
 이로 판단할지라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올바로 깨달아 행해야 함을 의미하기에 예수께서 “남을 비판하지 말라.”하신 것이 다른 사람이 행한 불의나 불법을 묵인하라는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마 7: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마 7:15)란 예수님의 분부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거룩한 것”과 “속된 것”과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기에 남을 비평하지 말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어두운 면을 덮어두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금하시는 것은 특정인을 제거하거나 매장시킬 목적으로 그의 별것 아닌 약점이나 적은 과실을 침소붕대 하는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심판관이 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 없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행한 확실한 동기나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을 착오 없이 가려낼 심판관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사도 바울이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전 4:4-5)고 기록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판사석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그들 자신이 피고석에 앉게 될 날이 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하신 것은 남의 잘못을 과장하고 확장하여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대신 그가 범한 과실을 사랑으로 지적하며 그가 스스로 자신의 실수나 과실을 인정하게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것이 믿는 자의 의무임은 물론 그렇게 해야만 자기가 비난이나 비평의 대상이 될 때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서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형제의 과실을 사랑과 관용의 마음으로 지적하지 않고 편견을 가지고 원하는 대로 비난하며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될 또 하나의 이유를 들려주신다. 


 자기 눈에는 “들보”가 있어도 무방하지만 남의 눈엔 “티”만 있어도 안 된다는 우리들의 어리석고 잘못된 고정관념을 지적하시며 예수님은 인간은 결코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또 아무런 편견 없이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서슴없이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속하여 예수께서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내 주겠다고 말 할 수 있느냐?”고 추궁하시면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어질 것이니 말이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들이다.(롬 3:23) 따라서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할 자격을 구비한 사람은 없다. 아무도 인간법정의 판사석에 앉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검정 법의를 입은 판사가 되어 피고석에 앉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기를 원하는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내어라. 그러면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도 빼낼 수 있을 것이다.”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환심을 사며,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위선적인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바 있다.(마 6:1-15) 이번엔 자기의 죄악은 깊숙히 감추고 남의 적은 과오나 부족함을 최대로 과장하여 들어내려는 악한 위선의 죄를 범하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거짓과 위선을 미워하신다. 거짓은 진리를 가리며, 위선은 거짓의 외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의에 도취된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위선자”라 부르셨다. 그들을 철두철미 표리부동한 삶을 사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네 위선은 철저하게 감추었으며, 힘없는 서민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멸시하며, 무시했을 뿐 아니라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진심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어느 바리새인이 성전에서 가슴을 치며 죄를 자백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며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기꾼도 아니고, 정직하지 못하거나. 간음하는 사람도 아니며, 또 이 세기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눅 18:11-13)라 기도한 것이다. 


 자기 눈에 커다란 들보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눈에서 티를 빼겠다는 이들은 예수님조차 질책한 바리새인 같은 위선자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점검하여야 한다.(고전 11:31)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과실이나 죄악을 문제 삼지 말라고 분부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마 18:13)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잘못을 범한 형제를 조용히 찾아가 타이르라 분부하신 사실로부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 범한 형제를 문책하는 심판관 아닌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 주려는 의사로서 혹은 그의 과오를 일깨워 주면서도 그가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재기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는 위로자로서 찾아가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여 서로의 짐을 지어주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좁은 길을 낙오하지 않고 걸어 천성에 이르기를 기대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함께 길을 가다 지치고 피곤하여 쓰러지거나 실족하는 형제가 있으면 달려가 그가 범한 잘못을 지적하며 함께 울어주고, 그가 입은 상처를 감싸주는 사랑의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네들에게 사랑의 비판자가 될 수 있는 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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