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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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결혼과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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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31-32)


 결혼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삶의 지침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평생 지켜야 할 결혼의 언약을 너무도 쉽게 파기했으며, 그 결과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이며, 집합체인 가정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주시는 귀한 인생의 교훈임과 동시에 시대적 요청에 응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요한 예수님의 결혼관과 이혼관이 산상수훈에서는 간결하게 요점적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후에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신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마 19:1-9) 따라서 산상수훈에 나타난 것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함께 묶어 생각해야만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 희랍인, 로마인들이 결혼과 이혼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예수께서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씀이 시대적 요구에 응한 것이란 까닭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결혼은 선택 아닌 필수적인 것이며, 인간이 수행해야 할 가장 신성한 의무 중의 하나라 믿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연구에 전념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은 한 결혼을 하지 않거나 연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만일 누구든 결혼을 거부하거나, 결혼하고도 자식을 원하지 않으면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겼으며, 그런 그들의 생각은 “나는 이혼을 미워한다.”(말 2:16)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인을 “물건”처럼 여겼다. 여자는 그녀의 권리와 주장을 전혀 내세울 수 없었으며, 모든 것을 아버지나 남편의 결정에 맡겨야 하는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여자들은 어떤 정당한 사유가 있어도 이혼을 할 수 없었으나, 남자들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쉽게 이혼을 할 수 있었다. 요약하면, 유대인들은 결혼을 신성시 헸기에 한 번 맺은 결혼 언약은 깨서는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아내를 버릴 수 있는 남성 중심의 편리한 결혼관과 이혼관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을 경시하며 천대하는 경향은 희랍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은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혼외정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어떤 부적절한 관계라도 맺을 수 있는 면허증이라도 소지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여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희랍인들은 여자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며, 철저하게 가정에 충실하며, 외간 남자와는 접촉조차 해서는 안 되지만 남자들은 마음대로 방탕한 생활을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희랍 성전 주변에 성전 창녀들이 들끓었고, 부자와 권력자들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들이 당당하게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희랍인들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이 같은 사회제도 하에서 희랍 남자들은 마음껏 성적욕구를 채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싫어지면 언제든지 이혼 할 수 있었다. 아무런 법적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두 명의 증인만 있으면 아내와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이런 불공평하고 무절제한 희랍사람들의 결혼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제국의 기반은 가정이었으며, 아버지는 그 가정의 절대적인 권력자였다. 아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학력이 좋고, 지위가 높으며, 나이가 많을 지라도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한 아들이 가정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로마 여인들은 희랍 여인들처럼 남편에게 예속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인생을 활용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공창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곳에 출입하는 것은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되었다. 희랍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도덕관념이었다. 


 이 같은 로마사회에 희랍인들이 들어오면서 로마인들의 도덕관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로마인들도 희랍사람들처럼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로마제국의 든든한 기반인 가정이 붕괴되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 세계를 제패하던 로마제국이 서기 476년에 멸망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 희랍인, 로마인들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생각은 이처럼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결혼관과 이혼관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주신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인간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가정의 문제는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졌고, 결국 국가의 존폐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삼아주신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해주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몸과 마음이 합해져서 하나가 되어야만 인간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는 남녀가 결혼하여 영육이 하나 되면 “둘만의 영속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16)고 설명하신다. 

 

 이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면 아내를 내보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 반문한다.(마 19:7) 이 반박 속엔 “당신은 율법의 전수자인 모세보다 위대하다는 말입니까?”란 냉소가 담겨져 있다. 그들의 심중을 들여다보신 예수께서 말씀해 주신다. 모세는 이혼 자체를 묵인하거나 허용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 성적 타락이 성행하는 비극을 우려하며 이혼 증서를 써주는 절차를 밟아 아내를 떠나보내는 것은 가하다는 “양보의 표현”을 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부부의 연을 맺어주신 것은 그들이 영육간에 결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평화와 질서 속에 관리하게 하기 위함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 된 아내와 남편은 상대가 음행의 죄를 범하지 않는 한 결혼의 언약은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도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 지적하신 음행(Marital Unfaithfulness)에 관해 당시 대립관계에 있던 힐렐 학파와 삼마이 학파 랍비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강경노선의 삼마이 학파에선 모세의 율법에 명시된 대로 여자가 음행을 저지를 경우에만 이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신 24:1), 힐렐 학파에서는 이혼의 조건을 그들 멋대로 확장시켰다. 여자가 정숙하지 못하거나, 음식 솜씨가 부족하다든지, 길에서 다른 남자와 말하는 것은 물론 시부모가 싫어하는 말한 해도 이혼 사유에 해당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서기관들이 안식일 준수의 세칙을 그들 마음대로 정한 것처럼 힐렐 학파 랍비들도 이혼세칙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사회에선 많은 사람들이 힐렐 학파의 주장을 지지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이혼에 관해 논쟁을 시작한 목적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혼에 관해 예수님이 삼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의 주장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는 가를 알아내어 그를 궁지로 몰아넣으려 했던 것이다. 그네들의 의중을 들여다보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아담과 하와의 부부의 연이 영속적인 것이었음을 밝히신다. 동시에 배우자가 혼외정사를 행한 경우에만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지 않고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상대가 불륜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이혼이 가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혼 중서를 써주고 아내를 버리라.”한 모세와 같은 취지에서 하신 것이라 생각하는 성경학자들이 상당수 있다. 결혼은 이혼을 염두에도 두지 않는 영속적이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신부된 이스라엘이 계속적으로 범죄하며 이방신들을 섬기는 간음죄를 범해도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의 품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라는(호 2:1-23) 사실에 입각한 견해다. 


 현대인들, 특히 서구사회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결혼이 “영속적인 관계”라 생각하지 않음은 물론 이혼은 아무 때나 해도 무방하며, 혼외정사까지도 부담을 느끼기는커녕 인생을 즐긴다는 자세로 행하고 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된 부부는 서로 믿고 사랑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짐을 져주며, 거센 인생의 풍랑을 서로 손잡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헤쳐 나가며, 인생의 본분을 다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그의 행상대로 창조하시고 부부로 맺어주신 까닭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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