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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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리의 반란 - 7일 천하로 끝난 시므리의 반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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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아끼고 신임하던 신하였다. 그러나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그가 북부 열 지파의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고는 남북 지파들 간의 갈등과 솔로몬을 향한 백성들의 불만을 이용하여 솔로몬에게 반기를 든다. 70인 역 성경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시리아에서 전차 300대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애급으로 망명한 것으로 되어있다. 

 

 솔로몬이 죽은 후 애급에서 돌아온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초강경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는 북부 열 지파의 추대를 받아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왕이 된 여로보암은 신본주의를 버리고 인본주의 정치체제를 확립했으며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게 한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과 그의 집을 향해 재앙을 선포하셨고(왕상 14:7-16), 그 말씀대로 그와 그의 집안은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여로보암이 22년간의 통치가 끝나자 그의 아들 나답이 왕위를 계승한다. 나답은 “고상하고 관대하다”는 그의 이름에 부합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아버지 못지않게 여호와께 범죄하며 백성들을 죄의 길로 인도하다 신하에게 죽임을 당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나답이 재위 2년 되던 해에 블레셋 성읍인 깁브돈을 공격할 때 부하 장수인 바아사가 그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이다.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바아사는 여로보암과 혈연관계를 가진 사람이면 남녀 구별 없이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의 잔인한 인간성과 권력에 대한 그의 욕망이 얼마나 강했나를 들어낸 처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인 바아사를 사용하셔서 여로보암의 죄악을 응징하셨음을 잊어선 안 된다(왕상 14:6-16, 15:29-30).

 

 바아사의 구테타로 여로보암 왕조가 2대 20년 만에 몰락하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한 후로 북 왕국엔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과 역모가 그치지 않는다. 도합 19명의 왕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동안 9번이나 왕조가 바뀐 사실은 북이스라엘에서 왕권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잘 말해준다. 


 바아사는 우상숭배를 계속함과 동시에 백성들이 유다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한 라마를 차지하고 요새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다 왕 아사에게 매수당한 시리아 왕 벤하닷이 후면을 공격하는 바람에 바아사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군대를 라마에서 철수한다.

 

바아사가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길로 인도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길까지 막으려는 악행을 계속하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통해 선언하신다. 티끌 같은 그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았더니 여로보암과 같은 죄악을 범하는 그와 그의 집을 멸하시겠다고 말이다(왕상 16:2-3). 


 여호와의 무서운 경고를 받고도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아사는 선지자 예후가 들려준 대로 그의 아들 엘라 때에 여로보암과 그의 집안이 멸망한 것처럼 시므리에게 멸족 된다(왕상 16:11-12). 


 바아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엘라는 아버지의 악행을 답습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낙을 추구하노라 틍치자로서의 직무마저 등한시하는 어리석은 왕이었다. 그런 왕 밑에 진실하고 충성된 신하가 있을 리 없었고, 사리사욕을 채우며 기회를 보아 권력을 움켜쥐려는 무리들만 늘어나게 되었다.

 

 그 중에 시므리란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궁중전차부대의 절반을 통솔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병권은 통치자가 가장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법이기에 시므리는 엘라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므리는 그를 향한 왕의 신뢰를 배반하고 엘라를 살해한다. 엘라가 왕이 된지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도 엘라는 신하들과 더불어 궁중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군신이 어울려 먹고 마시며 즐기다 보니 모두가 만취했을 때 도성 경비를 맡고 있던 시므리가 군사들을 이끌고 다르사의 집에 들이닥쳐 엘라 왕을 죽여 버린 것이다. 

 

 26년 전 엘라의 아버지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살해하고 왕권을 강탈한 것과 같이 시므리가 바아사의 아들 엘라를 죽이고 권좌에 오른 것이다. 바아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시므리는 바아사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남자는 그의 친척이나 친구들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학살했다. 


 여기서 우리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시므리가 저지른 악독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예후를 시켜 바아사를 꾸짖으시며 하신 경고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임을(왕상 16:1-4) 기억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악인을 사용해서라도 그의 계획을 실현시키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야 할 줄 안다. 나아가서 심는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엘라의 가족과 친지들이 몰살당할 때 함께 살해된 그들의 친구들을 억울한 희생자들이라 여기는 것도 올바른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악인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시므리의 모반으로 아사 왕조가 30년도 지속되지 못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때 시므리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병권을 쥐고 있던 오므리는 블레셋으로부터 깁브돈을 되찾기 위한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오므리의 병사들은 시므리가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한다. 충성을 바쳐야 할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그 가족들까지 학살한 불의하고 악한 시므리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갑론을박 끝에 군사들은 그들의 사령관 오므리를 왕으로 추대하기도 결의한다. 적지 않은 백성들까지 그들에게 동조하자 오므리는 깁브돈 공격을 중단하고 다르사로 진군한다. 구테타를 일으킨 시므리와 그의 추종자들을 제거하고 자기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엘라 밑에서 군권을 나누어 장악하고 있던 시므리와 오므리가 왕권을 놓고 벌린 전투의 승자는 오므리었다. 시므리가 역 구테타를 일으킨 오므리에게 패한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오므리를 과소평가한데 있었다. 엘라를 제거하고 왕권을 쟁취했을 때 시므리는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대결하고 있던 오므리가 군대를 되돌려 그를 역습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패인은 그의 반역행위가 지나치게 야비하고 잔인했던데 있었다. 

 

 그를 믿고 병권을 맡긴 엘라를 죽였으며, 그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린 시므리를 병사들과 백성들은 왕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므리의 야비하고 비열한 배반과 악랄한 행위는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예상치 못한 으므리의 역습이었기에 거기 대비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성이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시므리는 궁궐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에 타 죽는다. 왕좌를 탐했던 시므리의 불같은 욕망은 그 소원을 이룬지 7일 만에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잿더미로 변해 소멸되고 만 것이다.

 

 시므리의 7일 천하가 불꽃 속에 스러져 버렸다고 으므리가 바로 왕이 되고 나라가 안정된 것은 아니다. 시므리가 죽자 대신들이 추대하는 디브니와 군부가 미는 오므리 사이에 왕권쟁탈전이 벌어져 온 나라가 내전의 참화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 같이 북이스라엘에 혼란과 모반이 되풀이 되고 백성들까지 분열되어 4년 간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이 계속되다 유다의 아사 왕 31년에 오므리의 세력이 디브니를 물리치고 오므리 왕조를 출범시키게 된다. 북이스라엘이 세워진지 불과 50여년 만에 왕조가 4번 바뀌고, 3명의 왕이 살해당하는 슬픈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같은 비극의 근본 원인은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이 모두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그의 뜻에 따르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죄는 더 큰 죄와 악을 부르며, 죄는 쌓일수록 무서운 파괴력을 지니게 되기에 지도자가 죄의 길로 들어서면 그 자신이 파멸됨은 물론 나라전체가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위정자들은 위선의 탈을 벗어버리고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들의 역량을 올바르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백성들은 그들의 통치자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나라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그들 자신이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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