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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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 이스라엘의 1차 남북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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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이 왕정 수립 120년 만에 남과 북으로 분단된 근본 원인은 솔로몬의 범죄로 인해서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은 후 유다(남왕국)의 왕이 된 르호보암이 여로보암을 지지하는 북부 열 지파의 청원을 받아드려 세금을 감해주고 노역을 가볍게 해주었다면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쉬지 않고 이어지는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시는 분인 하나님의 뜻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의 역사는 또 다른 전쟁들과 사랑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유다의 초대 임금이 된 르호보암은 여호와가 인정하신 다윗 왕정을 부인하는 북왕국을 정복하려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선지자 스마야의 말을 듣고 그 계획을 중지하고 국정에 주력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력을 기른다. 그러기 3년 만에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들자 하나님께서는 애급 왕 시삭을 보내 그를 혹독하게 징계하신다. 


 시삭의 군대가 파죽지세로 진군하여 예루살렘까지 도달하자 르호보암은 나라가 그 같은 위기에 처한 것은 그가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임을 깨달고 크게 뉘우친다. 그러자 하나님은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고 그 명맥을 지켜주신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과 궁궐에 모아놓은 모든 보물들을 시삭에게 약탈당하고 매년 그에게 조공을 바치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그 후 13년 간 유다를 더 통치하면서도 르호보암은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왕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그가 평생을 우상숭배란 굴레를 던져버리지 못한 것은 모압 여인으로서 열렬한 우상숭배자였던 그의 어머니 마아나의 영향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르호보암이 17년 간 유다를 통치하다 죽자 그의 아들 아비야가 (열왕기 15장엔 그의 이름이 아비얌으로 기록되어있다.) 왕이 된다. 아비야는 왕이 될 적격자가 아니었다. 모세의 율법이 담겨진 신명기엔 왕위계승권은 장자에게 주어진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 21:15-17)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장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르호보암은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두었는데 그들이 낳은 아들이 28명, 딸이 60명이나 되었다.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두 번째 아내인 마아가의 첫 아들이었고, 그 위로 첫째 부인의 소생인 아들 삼형제가 있었다.

따라서 넷째 아들인 아비야가 형들을 제쳐놓고 왕이 된 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비야가 르호보암이 가장 총애한 마아가의 소생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믿어진다.

 

 

 

 아비야가 유다의 2대 임금이 되면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르호보암이 유다를 통치하던 때에도 그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사이에는 국부적인 싸움이나 사소한 분쟁들이 그치지 않았었다(왕상 14:30, 대하 15:6). 그러다 아비야가 왕이 되면서 이스라엘의 80만 병력과 유다의 40만 군대가 대결하는 남북간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 같은 전면전이 일어난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역사적으로 유다와 벤냐민 두 남부 지파와 북부의 열 지파사이에는 끊임없이 갈등과 적대감이 조성되어 왔었다. 이런 남북 지파들 간의 불협화음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두 왕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표면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기에 솔로몬이 죽으면서 남과 북의 서로를 향한 불만과 적대감이 노출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더 중요한 요인은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르호보암이 초대 임금이 된 유다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기반위에 세워진 신정왕국이었다. 


 반면 르호보암의 강경정책과 차별대우에 반발하는 북부 열 지파의 지지를 받아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그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인본주의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권좌를 유지하며 강화시키려한 것이다. 

 

 여로보암은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역량을 지닌 사람이었다. 선지자 아히아에게서 이스라엘이 분단될 것이란 예언을 듣기는 했지만 솔로몬이 죽자 망명했던 애급에서 돌아와 르호보암의 강경통치노선에 반발하는 북부 열 지파들을 규합하여 북왕국의 왕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정치적 능력이 탁월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왕조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그에겐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들을 단합시킬 명분이 없었다. 당장은 백성들이 그를 받들며 그에게 순종하겠지만 이스라엘 국민의 기본의무인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매년 3차례씩 올라가다 보면 그들의 마음이 그에게서 떠나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기울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부터도 벗어나기 힘들었다. 

 

 권좌에 앉아 이처럼 전전긍긍하는 여로보암 주위에 하나님의 뜻을 들려줄 선지가가 있었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크게 다르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도 없었고, 그럴 의도도 없었던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마리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다른 하나는 단에 두고 “이 후로는 예배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말고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구해낸 이 금송아지에게 절하라.”고 말한다. 


 여로보암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민 이스라엘을 우상숭배국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통치한 19명의 왕들은 모두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여로보암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 그 옛날 시내 산에 오른 모세를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며 춤추다 여호와의 진노의 채찍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출 32).

 

 도저히 융화할 수 없는 정치적, 종교적 갈등 때문에 끊임없이 이어지던 남북 간의 크고 작은 분쟁들이 아비야와 여로보암 때에 전면전의 양상으로 벌어진 것이다. 40만 유다 병력과 80만에 달하는 이스라엘 군사들이 에브라임 산간지대에 진영을 구축하고 대치하자 아비야는 스마리암 산에 올라 여로보암의 군사들을 향해 외친다. 


 “너희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권을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하신 언약을 모르느냐?”로 시작하여 아비야는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신하였는데 주인을 배반한 반역자임을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며, 레위인 아닌 일반백성을 제사장으로 삼는 범죄자가 여로보암임을 강조한다. 그런 까닭에 여로보암의 병력이 유다의 두 배일지라도 그들은 결코 유다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며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대적하지 말라.”고 말을 맺는다.

 

 아비야가 그의 진영을 향해 이같이 호소하는 동안 여로보암은 일부 병력을 유다 진영 후면으로 보내 유다 군을 앞뒤로 포위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유다군사들은 동요하거나 겁내지 않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군사들은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적에게 그들이 위축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소리 높여 외친 것은 “너희가 싸우려 나갈 때 나팔을 크게 불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구원하시리라.”(민 10:9)는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워주실 것을 간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도움을 청하는 유다병사들의 함성을 들으시고 이스라엘 군을 치자 유다군사들은 북군 50만 명을 죽이고, 도주하는 그들을 추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이 싸움에 패한 여로보암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한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들의 승패가 하나님께서 어느 편에 서서 싸워주셨는가에 따라 결정된 사실을 재언한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80만 대군이 그 절반에 불과한 40만 유다군에게 50만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며 패배한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싸움에 패한 여로보암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며 하나님을 떠나서도 복되고 성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 어리석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 의지함으로 승산 없는 싸움에서 당당하게 승리한 아비야가 강성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멀리하자 그 또한 악하고 실패한 왕으로 생을 끝냈다는 사실로부터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면서 번영과 결실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고 허망된 기대라는 인생의 교훈을 터득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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