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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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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예수님의 사역(갈릴리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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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예수님의 사역(갈릴리 지방)

김 대 억 목사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에 들어선 예수님은 광야로 들어가 기도하시며 그를 무너트리려는 사탄의 유혹을 통쾌하게 물리치신다. 예수님의 출전을 저지시키려다 실패한 사탄이 떠나가자 예수님은 그를 도와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을 실현시키고, 그 소식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제자들을 선택하신다. 그리고는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시시며 본격적인 구세주의 임무를 수행하신다.

 

 갈릴리는 팔레스타인 북부에 자리 잡은 남북이 110 킬로, 동서가 65 킬로 정도 되는 지역으로 예수께서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신 곳이다. 예수님이 다른 지역보다 갈릴리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정성을 기울이신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가장 심한 전쟁의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그 곳에 사는 잡다한 인종들 대부분이 극심한 가난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갈릴리는 204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각 지역의 인구가 줄잡아 만 오천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갈보리 지방엔 삼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며 비참하게 살고 있었음을 뜻한다. 때문에 예수님은 갈릴리를 출발점으로 인류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전역을 구석구석 다니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하늘나라의 진리를 가르치시고, 온갖 병마에 사로잡혀 고통 받는 이들을 치유해 주셨다. 하루에 두 구역을 가셨더라도 이백이 넘는 지역들을 다 방문하시는데 석 달 이상이 걸렸을 것이다. 식사도 제때 못하시며,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하신 채 매일 몰려드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시노라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극도로 피곤하셨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처럼 힘들게 치유사역을 계속하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누구신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오늘 날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때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것은 그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의 권능을 발휘하심으로 그가 메시아이심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출현하면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라.”(사 35:5-6)고 예언한 바 있다. 그러기에 투옥된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마 11:2)라 물었을 때 예수님은 가서 “맹인이 보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3)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치유사역을 통해 그가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죄악 세상에서 고통 받으며 진통하는 인간들을 돌보며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마 9:35-36)

 

 예수께서 병마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신 또 다른 중요한 사유는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질병들의 근본원인은 사탄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질병의 원인이 죄에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병에 걸리면 완치될 때까지 집단으로부터 격리되었으며, 병자들은 그들의 죄악을 하나님께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야만 완쾌될 수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병자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며 접근하기조차 꺼리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에게 찾아오는 질병의 근본원인은 사탄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눅 13:16) 그러기에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병자들을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뿐만 아니라 사탄의 손에서 건져내는 행위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시며 병마에 사로잡힌 이들을 고쳐주신 것은 온갖 악랄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인간을 멸망의 길로 이끄는 사탄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또 다른 사역인 가르치는 일은 주로 회당에서 하셨다. 회당은 유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관으로 그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디든 회당이 있었다. 회당의 기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때로(BC 607-537)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처럼 집단포로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이역 땅이긴 하지만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오르기도 했고,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까지 쌓아 올린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회당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민족의 포로가 된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닫고 회당에 모여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며, 선민의식을 고취하기 위함이었다.

 

 회당과 성전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성전에선 하나님께 제사만 드렸고, 설교나 가르침 같은 것은 행해지지 않았다. 성전은 단 하나로 예루살렘에 있었다.

 

 회당에서는 예배와 찬양과 기도 그리고 가르침과 설교가 행해졌다. 회당 모임에는 13세 이상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으며, 기도로서 예배가 시작되면 두 번째 순서는 회원 중에서 율법서와 선지서를 낭독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이 강연, 가르침, 혹은 설교인데 회당장이 그 순서를 담당할 사람을 지명하곤 했다. 오늘날 같은 담임 목회자가 없었던 까닭이다.

 

 유대인이신 예수님은 회당 모임에 자유로이 참석할 수 있었으며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기회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다. 말씀이 끝나면 질의응답과 토론의 시간까지 있었으니 회당은 예수님에겐 가장 적절한 사역 장소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말씀에서 절대적인 권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율법서나 선지서를 가르치던 서기관들은 구약에 관해서는 자기네가 권위자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네 권위를 더 높이기 위해 존경받는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을 본따거나 인용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예수님은 그런 것 전혀 없이 말씀하시는데도 듣는 사람들은 그의 말씀의 권위에 압도되었다. 그 까닭은 간단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란 것은 백성들만은 아니었다. 바리세인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모두들 예수님의 권위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놀라움과 경탄은 질투와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예수님의 권위에 사로잡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거일동을 눈여겨보며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자 예수님은 회당을 피해 산이나 들이나 호수가로 나가시게 된다. 사역의 장소를 제한된 인원만 들어올 수 있으며, 그에 대한 감시가 행해지는 회당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말씀하실 수 있는 야외로 옮기신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권능과 능력의 말씀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원근각처로 퍼져나가 그가 어디를 가시든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 외치신 복음의 선포는 회당에서 권위 있게 가르치시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가르침”은 사물의 이치를 설명하거나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잘못 아는 것을 바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지만 “설교”는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자에게 협상이나 타협은 금물이다. 그의 생각이나 의견 혹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뜻만을 전달하는 것이 설교자의 본분인 것이다.

 

 Dr. Huddon W. Robinson은 “설교자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강단에 서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요, 그의 곁에선 예수님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달하나 지켜보시며, 성령님은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마음을 주관하고 계신다.”(Biblical Preaching, P. 12)라 말한 바 있다.

 

 예수님에게 몰려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로마정권의 압제에 시달리며, 경제적으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며,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소망없이 사는 이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들 중 상당수가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이 기대하고 바라던 말씀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계속하여 외치셨다. “회개하라! 지금까지 살아온 죄악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너희들의 눈을 땅으로부터 하늘로 향하라. 너희들이 걸어온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걸어가라.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로 들어서라.”고 말이다. 그것이 진정한 설교이며, 그 설교를 하심으로 인간을 죄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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