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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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새해를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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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이 밝아왔다.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찬란한 빛을 발하며 솟아오른 계묘년 새해의 태양 아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 같은 새해 인사 속에는 엉켜져 있던 숱한 문제들이 금년엔 모두 잘 풀리고,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호전되어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고 바란다고 이 해에 우리들이 의도하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복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금년 한 해 동안 많은 복을 받으면서 원하는 것들을 다 성취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일들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금년 한 해를 어떻게 살기 원하실까?

현재 세계인구는 80억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님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인생의 몫을 할당해 주셨다. 따라서 우리들이 이 해에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그것을 달성하느냐는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사람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주셨으니, 시편 1편에서 그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편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인간을 향한 그의 크신 사랑과 진실하심에 감사하는 기도와 찬양으로 엮인 책이다.

이 시편의 서문이라 볼 수 있는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로다.”로 시작된다.

이 두 절의 말씀 속엔 시편 전체의 내용이 압축되어 있으며, 성경이 제시하는 삶의 원칙까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이 두 절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뜻을 따라 살며, 그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인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은 악인에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악인”은 살인이나 강도나 강간 등의 죄를 범한 흉악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악인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 아닌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살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죄악 된 삶이기에 그렇게 살면서 복 받기를 원한다면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법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이들의 무지의 소산인 것이다.

복되게 살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인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은 불의와 불법을 떡 먹듯이 행하면서도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의 뒤를 따르며 그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라도 주워먹겠다는 비열하고, 나약하고 어리석은 자세로 살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죄의 매력은 참으로 달콤하면서도 크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두렵고 불안하여 주저하지만 일단 죄의 길로 들어서면 그 감미로운 맛과 향긋한 향기에 취하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누리는 죄의 열매인 부와 명예와 권력은 풀과 같이 시들어 없어지며, 새벽안개처럼 해가 떠오르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복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멀리해야 할 세 번째 것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무리와는 어울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을 모를지라도 정규교육을 받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은 눈앞의 적은 이익을 위해 불의를 행하며, 악에게 동조하거나 악인들과 어울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그럴진대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사슬을 벗어버리고 그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을 묵인하거나 의도적으로 악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이 속한 단체나 사회나 국가를 파탄시키는 죄악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죄에 빠져 살면서도 복 받기를 원한다면 어리석고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들은 시냇가의 나무가 그 잎이 마르지 않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것이 2절의 가르침인 것이다.

시편 1편의 1절과 2절의 말씀은 복된 삶을 살기 위한 비결을 들려줌과 동시에 성공의 길과 실패의 길, 나아가서는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악인의 생각을 쫓아 행하며, 죄인들에게 동조하며, 교만한 자와 함께하는 것은 파멸의 길을 택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이들은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상실한 우리의 영원한 낙원 에덴동산으로 뚫린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 두 길에 관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악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택할 길은 두 개로 압축된다. 하나는 죄인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의인의 길이다. 죄인의 길은 파멸이 그 끝이요, 의인의 길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악인들이 떼지어 걸어가는 길로 들어선다. 쉽게 들어갈 수 있고, 길이 넓고 평탄하게 다듬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그 길이 끝나는 곳에는 영원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기에 그 길로 들어서는 이들과 알면서도 당장 얻을 수 있는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기가 싫어서 죽음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만 한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묘년 새해를 후회 없이 살며, 이 해가 또다시 저물어갈 때 가버린 열두 달을 뒤돌아보며 죄인의 일을 버리고 의인의 길을 걸으면서 복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은총을 찬양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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