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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36)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7.7 교육 개혁

7.7.1 교육제도의 취약점

앞에서 이어 수 차례 언급을 한바 1960년대 이전의 퀘벡 고등교육은 이른바 고전적 교육(cours classique)으로 시작해 대학 교육까지 갔다. 고전 교육의 목적은 의사, 변호사 및 신부의 양성이었다.

고전 교육의 내용을 보면 희랍어, 라틴어, 철학, 윤리학 등을 통해 사회 엘리트 층을 형성하는 것이 사명 이었다. 그리고 고전 교육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것이 관례이었다. 극소수만이 고등 교육을 받았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산업화에 필요한 전문 교과목은 전무 했다. 따라서 대학은 문학, 철학, 종교학, 의학, 법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공과 대학은 있었으나 인기 없는 분야로 취급 받았다.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정치학자 양성은 전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퀘벡 교육제도의 문제점은 이렇다. 첫째, 고등교육은 극소수인 지도층에 국한되어 있었다. 즉 고등교육은 비 민주주의적이었다. 둘째, 지방에는 대학이 없었다. 따라서 고등교육은 대도시에 한정되어 있었다.

셋째, 퀘벡의 산업화에 필요한 숙련 기술자 교육은 전무했다. 기술자가 없다 보니 경제개발이 될 수가 없었다. 넷째,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사회학자, 경제개발을 관리할 경제학자, 노사 관계를 개선할 전문가, 사회복지 제도를 설립하고 관리할 전문가가 없었다. 즉 사회 과학대학이 없다가 Laval 대학에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Levesque 신부가 설립했다.

 

7.7.2 교육제도 개혁 내용

 이러한 미개한 함정에서 탈피하기 위해 퀘벡 정부는 몇 개의 역사적 조치를 도입했다. Laval대 총장, Alphonse Parent 주교는 1964년에 교육 개혁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따라 다음의 조치를 취했다.

 첫째, 역사상 처음으로 교육부가 창설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육은 성당 당국에서 정부로 이양되었다. 둘째, 초-중-고등 교육이 법적으로 의무화 되었다. 셋째, 55개의 불어권 교육청과 9개의 영어권 교육청을 창설했다.

교육청을 통해 교육행정의 효율화와 합리화를 도모했다. 교육개혁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CEGEP 제도와 퀘벡 주립대 창설이었다. CEGEP 제도는 독일, 프랑스 등의 제도를 본받아 다양한 산업 기술인력을 배출하고 동시에 대학교육을 허락하는 세계에서 가장 신축성 있는 제도다.

CEGEP는 두 개의 진로를 허용한다. 하나는 2년 후에 대학으로 직접 진학하는 길이 있고, 또 하나는 3년 동안 기술을 습득하여 노동시장에 합류하는 길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3년 후 다시 대학으로 진학할 수도 있다.

한편, 2년 후 대학에 진학했다가 졸업한 후 다시 전문 노선으로 편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CEGEP에서는 수 백 개의 전문기술 교육이 있다.

더군다나 퀘벡에는 우리나라 같이 소모적 학벌주의가 없다. 천한 직업이 없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자기 능력 및 취향에 따라 직업 진로를 선택하고 직장을 구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CEGEP는 퀘벡 경제의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에 획기적 기여를 했다.

또한 CEGEP는 퀘벡 영토 어디에 가나 있으므로 고등교육의 지방화 및 민주화에 선두 역할을 했다. 퀘벡 영토는 한국의 17배나 되는 막대한 영토다. 1960년대 전만 해도 불어 대학은 퀘벡시의 Laval 대, 몬트리얼의 몬트리얼대 및 쉘부르크의 Sherbrooke대 밖에 없었다.

영어 대학은 몬트리얼의 McGill 및 Concordia대, Lenoxville의 Bishop대에 한정 되어 있었다. 그 외의 지역에는 대학이 전무했다. 또한 Laval대와 Montreal대는 오래 동안에 쌓인 관습, 편견 등으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교육 과목을 도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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