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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26)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6.6 Belanger-Campeau 보고서

Bourassa 정권은 1987 년 9월 5일 Michel Belanger 와 Jean Campeau를 공동 위원장으로 하는 ‘퀘벡 정치적 미래에 대한 특별 국회 원회’를 발족하여 1991년 3월 28일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의 내용은 위원회 내부의 이견 때문에 다소 타협적 건의를 했다.

Belanger-Campeau 보고서의 내용은 다음으로 요약 된다.

1) 연방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여 권한을 대폭 분권화할 것,

2) 이것이 불가능 하다면 퀘벡은 독립할 것.

이와 같이 Meech Lake 합의의 무산은 퀘벡 독립문제에 대한 격론을 더욱 격화 시켰다. 이러한 와중에 1992년 6월 2일 Prince Edward Island 수도 Charlottetown 에서 연방정부와 주정부 수상 및 원주민 대표들이 모여 캐나다 연방제의 미래에 대한 토의를 했다.

합의 내용에는 원주민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건의사항이 있었으나 그 중에 퀘벡의 개별성(Societe distincte)을 인정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 합의에 대해 1992년 10월 26일 국민투표를 한 결과 퀘벡 주민의 57%는 합의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반대하고, 여타지역의 주민의 54 %는 합의가 과도한 양보 라고 반대했다.

 

6.7 Parizeau 수상 및 제 2차 국민투표

1994년 10월 24일에 Jacques Parizeau 가 이끄는 퀘벡당이 다시 한번 당선되어 독립문제와 국민투표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그런데 1995년 6월 12일 퀘벡당의 Jacques Parizeau, 연방 국회에서 퀘벡 독립주의를 대표하는 Bloc quebecois 의 Lucien Bouchard, 그리고 퀘벡의 ADQ 당의 Mario Dumont 당수가 퀘벡 독립을 전제로 하는 미래에 대한 합의를 했다.

이것을 토대로 제 2차 국민투표를 하기로 했다. 제 2차 국민투표는 1995년 10월 30일에 시행되었다.

국민투표 질문은 이렇다. ‘Acceptez-vous que le Quebec devienne souverain, apres avoir offert formellement au Canada un nouveau partenariat economique et politique, dans le cadre du projet de la loi sur l’avenir du Quebec et l’entente signee le 12 juin 1995?’ (Lacorsiere, p. 191).

(1995년 6월 12일에 서명된 퀘벡 미래에 대한 합의(3자)된 범위 내에서 캐나다에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제안을 공식적으로 한 후 퀘벡 주가 독립하는데 대해 동의 하십니까?)

투표결과를 보면 독립주의자의 표가 거의 절반(49.4%)을 차지했다. 반대 표는 불과 50.6% 이었다. 반대표-찬성표 수 격차는 불과 54,288 표였다. 무효 표는 86,501 표로 독립주의자 진영에서는 이 표의 대다수가 찬성표니 투표 결과를 부인하겠다는 입장까지 보였다.

 

6.8 퀘벡당의 후퇴

Parizeau는 1996년 1월에 은퇴하고 Lucien Bouchard가 수상이 되었다. Bouchard는 2001년 3월에 은퇴하고 UQAM 교수 Bernard Landry가 후계자로서 2003년 4월 29일까지 수상으로 있다가 총선에서 실패한 후 2005년 4월 29일 야당 당수를 사임 했다.

2003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퀘벡 자유당이 집권을 하고 있다. (John A. Dickinson et Brian Young, Breve Histoire Socio-Economique du Quebec, Septentrion, 2003, p.393-295)

1995년의 국민투표 후 앞으로의 퀘벡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는 더욱 어려워 졌다. 우선 1998년에 캐나다 대법원은 일정 주(Province)가 단독적으로 하는 독립선언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1999년에는 현 캐나다 자유당 당수 Stephane Dion 이 제안한 “국민 투표 시 제출할 질문은 정확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키므로 애매한 질문을 못하게 되었다.

1999년에 캐나다 대법원은 또 한 개의 법을 채택했다. 국민투표 결과로 주민의 독립 선호가 분명하면 연방 정부는 독립에 대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법이다. 퀘벡 독립주의자는 이 법 때문에 단순한 과반수(51%)로는 독립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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