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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25)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이러한 퀘벡 요구에 대해 주정부 수상간의 합의 전에 Trudeau 수상은 헌법 송환을 하겠다고 알렸다. 한편 1981년 11 월 5일-6일 밤, 퀘벡 수상을 제외한 상태에서 7 개 주 수상이 퀘벡 요구관계 없이 헌법을 송환하자는 합의를 했다. 다시 말하면 퀘벡 주는 배반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 밤을 ‘긴 칼의 밤’(la nuit de longs couteaux)이라 한다.

 결국 1982년 3월에 영국의회는 ‘Canada Bill’을 승인하고 1982년 4월 17일 캐나다는 새로운 헌법을 갖게 되었다. 즉 1867년의 헌법 개헌을 캐나다가 독자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퀘벡의 개헌 과정에서 퀘벡이 거부권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1982-1983 기간은 세계 경제위기 시기이었다. 퀘벡 정부는 재정난으로 인해 법을 마련하여 공무원의 봉급을 감소하므로 퀘벡당을 지지했던 노조의 반발을 야기시켜 퀘벡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

마침내 Brian Mulroney가 1984년 9 월 4일 연방 수상이 되었다. 총선 때 Mulroney 수상은 퀘벡주가 영광스럽고 기뻐할 수 있는 헌법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대해, Levesque 수상은 ‘재미 있는 모험’(le beau risque)이라 하며 한번 지켜 보겠다고 했다. 이것은 퀘벡 독립을 당분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해설하는 독립주의자가 많았다.

 

6.5 Levesque 의 은퇴 및 Meech Lake 협상

Levesque의 실망은 컸다. 그는 이러한 말을 했다 “Pour la prochaine election, la souverainete n’a pas aetre un enjeu…” (다음 총선에서는 독립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다수의 핵심 독립주의자가 퀘벡당에서 탈당을 했다. 그리하여 Levesque 수상도 1985년 6월 20일에 정계를 떠났다. 그리고 12월 2일 총선에서 퀘벡당은 야당이 되었다. 한편 1987년 6월 3일 수상들이 Meech Lake (Gatineau 지역)에 모여 퀘벡 문제를 토의했다.

도달한 합의는 이렇다: “toute interpretation de la constitution doit concorder avec : a) la reconnaissance de ce que l’existence de Canadiens d’expression francaise concentres au Quebec mais presents aussi dans le reste du pays, et de Canadiens d’expression anglaise dans le reste du pays mais aussi presents au Quebec, constitue une caracteristique fondamentale du Canada; b) la reconnaissance de ce que le Quebec forme au sein du Canada une societe distinct” (La coursiere, p. 188).

(개헌은 첫째 퀘벡에 집결되고 또한 여타 지역에 거주하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그리고 퀘벡주 외에 집결되고 또한 퀘벡주에도 거주하는 영어계 캐나다인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둘째 퀘벡은 개별적 공동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에 입각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합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실속은 없는 합의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주가 3년 이내에 주 의회의 승인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Manitoba 의회와 Newfoundland 의회는 부결하고 말았다.

Trudeau는 la Presse 지 1987년 5월 27일 호에 Meech 합의는 완전한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실패작이라 했다. (Comme gachis total, il serait difficile d’imaginer mieux).

그러나 Bourassa 수상은 포기하지 않고 퀘벡 자주성에 대한 신념은 잃지 않았다. “Quoi qu’on dise et quoi qu’on pense, le Quebec est, aujourd’hui et pour toujours, une societe distincte, libre et capable d’assumer son destin et son developpement.” (Lacoursiere, p.189)

(누가 무어라 하든지 누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퀘벡은 오늘도 또 영원히 개별적 나라이고 스스로의 발전과 운명을 책임 진다).

이 말에 당시 여당 당수였던 Jacques Parizeau (몬트리얼 상과대학 시절 필자의 동료교수 출신)는 Bourassa를 극찬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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