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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21)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5.7 언어 개혁

 1960년대에 와서도 언어분쟁은 계속되어 이것이 독립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퀘벡 정부는 1965년에 2중 언어 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켜 유명한 언론인인 Andre Laurendeau 가 공동 위원장의 한 사람이 되었다. 보고서의 핵심을 보면 이렇다.

“ Le Canada traverse la periode la plus critique de son histoire depuis la Confederation. Nous croyons qu’il y a crise : cest l’heure des decisions et de vrais changements; il en resultera soit la rupture, soit un nouveau agencement des conditions d’existence.” (Lacoursiere, p. 171)

 (지금 우리는 건국 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것은 위기다. 참다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분리 되어서 떠나거나 혹은 공생의 조건을 재조정 해야 한다.)

 같은 해 보수당(Union nationale)의 Daniel Johnson 당수는 이러한 말을 했다. “La meilleure facon d’obtenir l’egalite dans la nation canadienne binationale serait preparer immediatement les conditions d’independance du Quebec qui deviendra inevitable, si une nouvelle condition n’est pas adoptee…Quant a moi, je preferais que nous puissions en arriver a l’egalite par voie de negociation, sans passer necessairement par etape de l’independance qui comporte, il va sans dire, un certain risque assez difficile aevaluer.”

 (만약 개헌이 없다면 프랑스계 캐나다가 이중 민족 국가인 캐나다 안에서 동등성을 확보 하는데 좋은 방법은 당장 독립 준비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이렇다. 계량화는 힘들지만 분명히 위험 소지가 있는 독립 단계를 거치는 것보다는 협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Johnson은 1966년 6월 5 일에 퀘벡 수상이 된 후 이러한 말을 했다. “Si le Quebec vient a se separer du Canada, c’est parce que nous y aurons ete forces. Aucun Canadien francais ne souhaite au fond de lui-meme s’enfermer dans un ghetto.” (lacoursiere, p. 173)

(만약 퀘벡이 독립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대안이 없어서 하는 것이다. 아마도 고립된 게토(Ghetto)에 갇히고 싶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은 없을 것이다).

야당 당수가 된 Lesage 도 한마디 했다. “Si le Quebec accedait a l’independance, il lui arriverait ce qui arriva a plusieurs pays d’Afrique qui jouissent l’independance politique, mais non pas l’independance economique, a tel point que l’accession a l’independance a marque pour eux une chute du niveau de vie.” (Lacoursiere, p. 173)

(만약 퀘벡이 독립하면 아프리카 나라들 같이 될 것이다. 이 국가들은 정치적 독립은 성공했지만 경제적 자립은 못하여 결국은 생활수준이 하락하고 말았다.)

 이 두 지도자의 태도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독립자가 아니라도 퀘벡 지도자들은 독립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려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퀘벡인에게 큰 희망을 주었던 Lesage 가 많은 퀘벡인 눈에는 ‘반역자’가 된 것이다.

한편 1967년 7월 24일, Charles de Gaule 프랑스 대통령이 Montreal 시를 방문하여 시청 앞에서 “퀘벡 만세! 몬트리얼 만세! 자주 국가 퀘벡 만세!”라고 고함을 한 후 퀘벡의 정치 분위기는 다소 심각해졌다. 많은 독립 주의자들은 프랑스가 퀘벡 독립을 도와 줄 것이라는 착각도 했다.

필자는 de Gaule 장군이 섰던 발코니 밑에 동료들과 서 있었다. 분명한 것은 de Gaule 장군이 독립주의자들에게 약간의 임시적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다. 만세 삼창에 이외에도 그는 Johnson 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Je suis pret a vous donner un coup de main qui servira pour l’avenir.”

(내가 도와드릴 터이니 앞으로 잘 이용하세요.)

 

6 퀘벡 독립당 퀘벡독립

6.1 퀘벡정당 (Parti Quebecois-PQ) 탄생

1967년 10월은 퀘벡 정치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이 순간에 퀘벡당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퀘벡 자유당 간부회의가 열렸다. 당시 가장 영향력이 있던 Paul Gerin Lajoie 와 Rene Levesque 자유당 핵심 두 간부가 대결한 것이다. 그들은 퀘벡 미래에 대한 건의안을 각각 제출했다.

Lajoie는 연방주의를 유지하면서 연방 체제 안에서 퀘벡이 갈 길을 찾자고 건의 하는 반면, Levesque는 연합적 독립국가(Souverainete association)체제를 건의했다. 결과적으로 Lajoie 안이 채택되었다. 11월에 Levesque 는 자유당에서 탈당하고 말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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