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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19)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그러나 퀘벡 주의 현대화는 수 많은 장해물을 극복해야 했다. 다행히도 자유당에는 유능한 인재가 많았다. 특히 George Emile Lapalme 은 자유당의 당면과제로 문화부 건립, 대학교육 무료화, 경제개발위원회(Conseil d’orientation economique) 강화 그리고 특히 주정부-연방정부 관계부(Ministere des affaires federales-provinciales) 건립 등이다.

가장 뛰어난 인재는 Paul Gerin Lajoie 와 Rene Levesque 이었다. 다음에 설명 하겠지만 연방주의적 국가주의와 독립적 국가주의의 대립은 이 두 사람 들로부터 시작했다. Lesage 수상은 승리 후에 있었던 주정부 수상회의에서 돌아오자 마자 이런 말은 했다.

퀘벡 주가 원하는 것은 “La pleine souverainete dans les domaines qui relevent de sa competence ” (Lacoursiere,p.166). (퀘벡주의 권한 안에 있는 모든 분야에서의 자주권)이라고 했다. 이렇게 볼 때 Lesage 는 일종의 독립운동주의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강한 연방주의자이었다.

Rene Levesque 는 Lesage 의 입장에 대해 이러한 말을 했다. ‘‘Je crois, peut-etre a tord que nous n’avons pas vraiment besoin du (Canada) et je crois que ce sentiments va grandir parmi les Canadiens francais.’’(Lacoursiere, p.168). (잘 모르지만 우리는 캐나다가 실제로 필요 없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이러한 생각은 앞으로 더 퍼질 것이다)

 

5.6 퀘벡주의 조용한 혁명

조용한 퀘벡 혁명은 카톨릭 성당의 후퇴, 교육제도 개혁, 사회복지 제도 개혁, 경제기적 등으로 인한 퀘멕주의 존엄, 자부심, 자존심, 자신감회복을 의미한다.

 1960년대에 와서 퀘벡의 카톨릭 종교는 전적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1961년에는 신부의 사복 차림을 허용했다. 그 전에는 신부는 반드시 ‘수단’이라는 신부들의 정복을 해야 했다. 이유는 성당도 사회 흐름과 보조를 맞추자는 의도였다.

1960년부터 교구(Parish)의 주민생활관련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교구 기관이 관리하던 오락시설, 영화관 및 위생시설 등의 관리가 시 정부로 이양 되었다. 가장 중대한 사건은 1960년대에 소개된 피임약이었다.

1968년 7월 29일 교황 Paul 4세의 인간 생명에 대한 회칙(지침서), Encyclique Humanae Vitae를 발간하여 성적 자유를 규탄하고 유산을 금지시켰지만 퀘벡 여성은 피임약을 대대적으로 포용하며 성적 자유 운동을 펼쳤다. 동시에 퀘벡 여성의 사회 위치는 대폭 제고 되었다.

1964년에는 자산분리 결혼(Regime de la separation de biens) 제도가 도입되어 여성도 자기자산을 독자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여성은 처음으로 미성인이 아니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1968년에는 성당 외부에서의 혼인이 허용되어서 신부의 서명이 필요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성당이 독점하고 있던 교육을 일반화 하자는 운동 Mouvement laique de langue francaise 은 교육의 탈 성당화를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카톨릭 성당은 교육제도 관리를 정부에 이양하고 말았다. 신 프랑스 시대부터는 성당의 병원을 포함한 의료서비스도 주정부 책임이 되었다. 또한 자선 사업도 성당이 총괄해 왔는데 이 때부터 정부의 사회 복지 서비스가 되어 성당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카톨릭 종교의 후퇴는 퀘벡 사회에 엄청난 파동을 일으켰다. 퀘벡 주민은 수 백 년 동안 주민의 결혼, 취직, 이혼 등 모든 개인 생활을 억압해온 성당에서 해방되므로 각자의 자유, 정체성, 인간의 존엄, 자존심 등을 찾았다. 특히 그들은 인간의 아름답고 새로운 창의성을 발견하고 개발했다.

교육이 탈 성당화 되므로 정부는 새로운 교육제도를 강구했다. 그리하여 정부는 교육 개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은 필자의 모교인 Laval 대학의 부총장 Alphonse-Marie Parent 신부였다.

필자는 유학시절 Parent 부총장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본 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1964년에 교육부가 창설되었고, 또한 현 CEGEP 제도가 도입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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