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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을 합장(合葬)으로 모시고
chojungdae

한평생 힘겨웠던 삶의 무게
꽃잎 지듯 내려놓으시고,
아직은 손이 시린 이른 봄날
아버님이 먼저 가 계신 잔디 집.
영원히 따스할 그 자리에 함께 묻히시네.

 

흙을 뿌리고
흰 국화 송이를 올려 놓으면서
우리 삼형제 통곡 대신 
회한의 눈물을 함께 묻는 이 시간 
산바람도 침묵하고 
산새들도 울음을 멈추네.

 

눈부신 황토빛
찬란할 어둠의 집 안에서
살아생전 차마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부부애의 사랑 이야기로
끝 간 데 없이 오래 오래
아름다워지소서 어머니!

 

두 손 모으고 둘러 선 
우리 후손들도 
모두 가슴이 따뜻해지고 있네
모처럼 느껴 보는 귀한 온기에
온 가족 회한의 눈물로 축복 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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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곳에서 천주교식 장례식을 치르고 모셔간 어머님의 유해를 용인 공원묘지에 계신 아버님 산소에 합장으로 모시는 날. 하늘도 축복을 내려주시듯 너무나 맑고 청명했다.


토론토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왔으니 그저 가까운 친척들만 모여 간단한 예절로 아버님 묘지에 합장으로 모시자고 했으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한국에 사는 동생들과 일가친척들이 너무 섭섭하니 한번 더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는 강한 고집을 매정하게 꺾을 수가 없어 ‘건국대학병원’ 영안실에서 다시 장례예절을 치르고 떠나왔다.


우리 부모님의 생애는 좀 특별하시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 때부터 아버님은 집을 나가 딴 여자와 사시면서 두 집 사림을 하셨다. 그러나 아버님은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시라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신 적은 한번도 없었으나 우리 형제들은 항시 아버님 사랑에 배가 고팠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화목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동무들의 집이 한 없이 부러워하면서 살아왔다.


이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의 유해를 꼭 한국으로 모셔가서 아버님의 묘지에 합장으로 모시기를 고집하는 말 못할 이런 사연들이 우리 형제들에게는 아직도 지울 수 없는 한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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