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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여린 사슴 뿔
chojungdae

 

 

감자 창고를 청소하다가
어두운 나무 계단 밑바닥에 떨어져 
죽을 힘을 다해 
새싹을 틔워 올리고 있는
만신창이기 된 감자 한덩이를 발견했습니다.

 

 

피를 말리고 살을 깎아 내어 
새싹의 촉을 밀어 올리고 있는
감자의 꼬락서니가 정말 말이 아니었습니다.
쪼그라들다 못해 곪아 터지기까지 한
볼품없는 몰골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서 있는데,
살빛이 도는 여린 사슴 뿔 모양의
어린 싹들은 
나를 보고 울먹이면서
살려 달라고 내 손을 잡고 매달렸습니다.

 

 

불쌍하고 장한 것들…
그 차가운 시멘트 바닥 어둠 속에서
이렇게 귀한 생명의 싹을 틔워내다니!
식당 뒷마당 한구석에
땅을 파고 고이 심어 주었습니다.

 

 

그날 따라 밖에는 
소리 죽이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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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봄은 노루 꼬리보다도 더 짧다. 봄인가 싶으면 어느덧 뜀박질하여 여름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오랜 세월 동안 이민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적성에 맞지 않는 여러 직종의 일들을 하면서 살라왔다.

 


언젠가 식당업에 종사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늦은 봄날 틈을 내어 감자창고 청소를 하다가 이 시 한 편을 건졌다.

 


나무 계단 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견된 곪아 터지고 쪼그라든 감자 한덩이. 그런데 그 볼품 없는 감자가 분홍 살빛이 도는 여린 사슴 뿔 모양의 새싹들을 밀어 올리고 있는 광경을 보고 나는 생명의 신비에 취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을 맛보았다.

 


그리고 새싹의 밥이 되느라 썩고 곪아 비뚤어진 감자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한참을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신비로운 생명의 경이가 어디 어둠 속에서 싹을 띄우는 이 감자뿐이겠는가. 그래서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 안에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창조의 신비가 흐르는 강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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