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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29)-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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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의 남서 지점에 있는 타브가(Tabgha)에는 “주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여자와 어린아이 외에 오천 명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마 14:13-21)는 곳에 세운 교회가 있습니다.

 

1936년 독일 고고학자가 이곳에서 AD350년경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교회의 유적들을 발굴한 후 독일 퀠른 대주교에 의해 1982년에 오병이어 모자이크가 있는 곳을 교회 제단 앞으로 오게 설계하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아마도 산상수훈을 설파하신 한참 후인 것 같습니다.

이 때에는 이를 기록한 마태도 세리 자리를 떠나 주님을 따를 때였을 터이니, 그가 직접 목격하였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서 놀라기는 하였어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일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님과 함께 다니면서 주님이 일으키시는 많은 기적들을 보았으면서도 정작 또다시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실 때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에게 믿음의 확신이 없었던 것이 증명되니까요. 결국 주님께서 또 다시 떡 일곱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었을 때에도 제자들은 “어떻게…”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성경에서 예수가 일으킨 여러 기적(앞으로는 이적을 기적이라는 조금 더 편한 말로 바꾸도록 하겠습니다.)들이 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과 떡 일곱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과학이나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기적입니다.

그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설교와 주석들이 이 기적을 다루어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우리들이 만족하게 이해하여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글은 아직 못 보고, 못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일을 진보적인 신학을 자처하는 신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하며 이해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즉 “그 당시에 사람들이 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조금씩은 가지고 다니었는데 서로가 눈치를 보며 먹지 못하고 있다가 어린아이가 내어놓는 것을 보고 서로 너도나도

내놓으니까 모두 배불리 먹고 그 남은 것이 12바구니가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그럴 듯도 한 이야기입니다. 아니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내어놓은 해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해석을 믿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고사에 십시일반이라고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줄여 먹으면 한 사람을 먹인다는 말처럼 먹을 것을 줄여서 나누어 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은 양을 서로 나누어 먹었는데 어떻게 12바구니나 더 걷을 수가 있었을 까요?

이것보다는 조금은 더 복음주의에 가까운 해석으로 이렇게 설명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모두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육체적인 배부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느낀 영적인 배부름이었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는 분들은,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믿기를 즐겨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이니 믿기는 믿어야겠는데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으나 이런 설명은 조금 설득력이 있는 것 같으니까요.

 

물론 영적인 배부름도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분명하게 육체적인 배부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기적은 우리의 지식이나 상식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그래서 성경말씀이 거짓말 같다는 의심을 주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국어사전의 정의대로 기적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일" 즉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우리의 상식 밖의 일인 기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과학과 종교의 차이일까요? 이해와 믿음의 간극일까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는 이 곳 Toronto에 한인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이 곳으로 오신 분들은 주로 남미로 농업 이민을 떠나셨던 분들과 덴마크에 농업 연수를 가셨던 분들, 그리고 서독에 광부로, 간호원으로 파송되었던 분들이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이곳으로 오시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젊은 남녀들이었고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초창기에는 별로 없었습니다.

 

간간이 한국에서부터 힘든 심사과정을 통해 오시는 젊은 부부들도 있었지만 요즈음처럼 주머니에 풍족하게 달러를 지참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언어와 풍습이 다른 새 땅에서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전공과는 관계없이 닥치는 대로 공장에서, 식당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들을 하다가 주일이 되면, 믿고 안 믿고가 문제 아니라 한인들이 모이는 교회로 모이기 시작하였지요.

 

Toronto에서 일찍 시작된 한인 교회들이 성장하면서, 또 우후죽순 격으로 많은 한인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Toronto에서는 “부흥회”, 혹은 “부흥 성회”라는 이름으로 많은 집회가 열리면서 한국에서, 미국에서 유명한 강사 목사님들을 초청하는 일들이 빈번하였습니다.

 

많은 부흥 강사님들이 오셔서 좋은 말씀들로 이민 생활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위로해 주시는 중에 “오병이어”의 예화가 빠질 수가 없었던 것 같았고, 이를 듣고 있던 청중들도 대개가 먹고 사는 일에 전심전력을 하고 있을 때였기에 그 이야기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말에는 “옷이 날개다”라며 인생을 “의.식.주”의 해결 이라고들 하였지만 “의.식.주”란 “식과 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의 양반들 계층에서나 호기롭게 자랑하며 할 수 있는 소리이지, 당장 내일의 양식이 귀한 사람들에게 걸맞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뿌리 깊이 박힌 “의.식.주” 사상 때문인지 밤새 이슬을 맞으며 지렁이를 잡아야 했던 많은 한인들도 지렁이 밭인 골프장으로 가기 위하여 모이는 곳에 갈 때에는 옷도 말끔히 차려 입고 얼굴도 깨끗하게 화장까지 하고 모인다고들 해서 서글픈 미소를 지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민 초기의 일화들을 만들던 이들이 점차로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이곳 사회에 적응하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옛날이 된 이민 초창기”에 교회에 나가며, 혹은 부흥 성회에 참석하며 “오병이어”의 설교를 들었던 그 총각 처녀들인 이민 1세들의 무릎에는 손주 혹은 증손주들이 재롱을 떨고 있는 것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들에게는 50여 년의 세월 속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지금 당장 우리의 눈에 보이고, 입으로 먹을 수 있는 떡과 물고기를 줄 수 있는 인자로 오신 예수님은 더 이상 우리 눈앞에 계시지 아니하고, 이제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계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적”이란, 아무리 해도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는 믿음의 경지 안”에 있는가 봅니다.

200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모자이크로 만들어 표현하였던 “오병이어”의 그림은 1700년이 지난 지금도 “오병이어”의 모습 그대로 “오병이어 기적 교회” 제단 아래 빛도 안 바랜 채 선명하였습니다.

 

오병이어 기적 교회의 모자이크

 

모자이크 바로 뒤에 놓인 제단. 제단 아래의 바위 위가 불에 탄 흔적은 왜일까요?

 

교회 앞 마당의 감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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